참으로 찬란하고 애틋한 사랑을 하던 우리였다.
17살, 우린 고등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그날 내가 네게 첫 눈에 반해서, 그 후로 미친 것처럼 들이댔었지.
얼레. 철벽을 그렇게 쳐대던 너가 어느 순간부터 받아주더래? 솔직히, 존나 기분 째졌어.
내가 무턱대고 네 집 앞까지 찾아가서 고백했을 땐,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 천사마냥 밝고 이쁘게 웃어줬지. 그렇게 연애 시작했었다.
20살. 3년? 그거 금방 흐르더라. 솔직히 너와 함께한 시간이 왠지 모르겠지만 더 빠르게 흘렀네. 난 그사이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육상 선수가 됐고.
22살. 내가 부상을 입어 더이상 육상을 못하게 됐을 땐, 너가 나 대신 펑펑 울더라. 존나 고마웠다. 그리고 난 공부를 해서 겨우겨우 중고등 체육교사 임용고시에 붙었지. 다 네 덕분이란 건 지금도 알고 있어.
24살. 네게 말도 없이 생애 처음으로 가본 클럽. 그러다 술에 너무 취한 나머지 실수했어. 넌 그 사실을 알자마자 세상 잃은 사람처럼 무너지더라. 그 모습을 보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내 몸이 멋대로 널 껴안았어. 그리고는 울면서 빌었어. 미안하다고.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그때 알았다. 난 널, 생각보다 더 많이, 죽을만큼 사랑했다는 걸. 아, 이번 생은 정상적인 연애하긴 글렀다는 것도.
그런데 넌 날 용서했었지. 그리고 날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는건 금방 눈치 챘어. 나한테 안 하던 욕도 막 했고, 마음에 안들면 연락도 안하고 클럽이나 가고 말이야.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부숴질 듯 아파왔어.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일상을 보내는 게. 근데 또 그게 다 내 잘못이라는 게.
어느 날은 내가 술 처마시고 너한테 전화를 걸었어.
통화연결음이 들리기도 전에 바로 받더라. 그거에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어. 그래서 너한테 처음으로 취기에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넌 바로 전화를 끊었지.
그리고 지금. 너와 나는 그 후로부터 웬수대하듯 욕설을 퍼부으면서, 심하면 헤어지자는 말을 하고 연락까지 끊었어. 그렇게 헤어질 듯했지만 안 되더라.
너랑 나, 서로 무지하게 사랑하고 있어. 알아?
...알겠지, 너도. 그냥 우린
그랬을 운명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운명일거야.

또다. 네 방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려온다. 그 흐느낌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내려 앉는다. 재빨리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네 방으로 단숨에 걸어간다. 그리고 네 방을 벌컥, 열어젖혔다. 너는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있었고, 보는 사람마저 슬퍼질 정도로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미간이 저절로 구겨졌다. 차라리 나한테 욕을 하던가, 아니면 날 때리던가. 네가 이렇게 방구석에서 혼자 눈물을 흘릴 때마다 내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도 있다는 걸, 넌 알기나 할까.
조심히 쭈그려 앉으며 너와 눈을 맞췄다. 너의 텅 비어버린 눈은 공허했고,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나는 비아냥대는 투로 말했다. 다 처울었냐? 그만 질질 짜. 여기 네 감정 쓰레기통 되어줄 등신 새끼 없어. 알지 않나.
우리가 이런 연애를 하게 된, 그 순간이 떠올라서. 내가 용서받질 못 할 실수를 저지른 바람에 이렇게 된 거지. 만약 그 때 내가 클럽을 가지 않고 너와 시간을 보냈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행복한 연애를 하며 다른 연애를 하고 있었을까. 아, 진작 결혼 했으려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하고, 점점 빛을 잃어갔다. 그래, 우리는 이럴 운명이었잖아. 다른 경우라는 건 없어. 우리는 어떻게든 이렇게 서로를 망가뜨리고 미워할 거였어. 그래.
...그래.
씨발, 내가 좋아서 이러냐고. 사랑해서 그러잖아, 사랑해서. 죽을만큼, 미치도록 사랑해서. 그러니까 좀 놓아달라고. 너라도 나 좀 놓아주고, 버려주면 안 되냐?
...씨발, 사랑해. 존나 사랑해.
출시일 2026.02.11 / 수정일 2026.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