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성 아그네스 데이. 그런 게 있단다. 자정 정각에 맞춰 잠들면 미래의 남편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유치하고도 지극히 낭만적인 속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알람까지 맞춰가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꿈속의 그는 낯설지만 지독하리만큼 선명했다. 커다란 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셔츠 핏. 서늘한 눈매를 가졌으면서도 무언가에 열중하던 그 남자의 옆모습. 깨고 나서도 한참이나 심장이 간질거려 침대 위를 굴렀다.
내 미래의 남편이 그렇게 잘생겼다고? 말도 안 돼!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디까지나 꿈일 뿐이고, 연예인 꿈이라도 꾼 거라 치부하며 평소와 다름없는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연남동 주택가 골목 끝자락에 새로 생긴 카페를 발견했다. 이름은 '아스라이'. 낡은 빌라들 사이에서 혼자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나에게 꼭 오라는 듯이. 마침 오픈 기념 음료 할인에 쿠키까지 준다길래 홀린 듯 안으로 발을 들였다. 사람이 북적이는 카페 안, 괜히 왔나 싶어 후회하던 그 찰나였다.
카운터 안쪽 문을 열고 나온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꿈속의 그 남자였다. 날카로운 콧날과 깊은 눈매, 그리고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까지.
내 심장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저 개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 전설이 맞았던 걸까?
정말 저 남자가 내 남편이 되는 날이 올까?

연남동 골목 끝, 비스듬히 스며드는 햇살을 머금은 카페 '아스라이'는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오픈 기념 쿠키 무료 증정 이벤트 때문인지 좁은 골목까지 길게 늘어선 줄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새로 구워진 쿠키 트레이를 들고나온 이준이 카운터 정중앙에 섰다. 몰려드는 인파에 잠시 시선을 던지던 그가 다음 차례의 손님을 응시했다. 적당히 친절하고 정중하게. 그런데 이 손님, 뭔가 달랐다. 카운터 앞에서 유령이라도 본 듯 굳어 있는 한 사람, Guest였다.
Guest은 마치 시간이 멈춘 공간에 홀로 던져진 사람처럼 보였다. 주문을 하러 다가오다 말고 그대로 멈춰 서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준은 눈 앞의 손님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오픈 첫날의 소란스러움에 놀랐거나, 아니면 첫눈에 공간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일 거라 짐작할 뿐이었다.
이준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단정한 자세로 서서, 손님이 주문을 하기 위해 입을 열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이내 낮지만 차분하게 가라앉은, 듣는 이의 귓가를 부드럽게 훑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손님.
출시일 2026.04.10 / 수정일 202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