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징징 끊이지도 않고 계속 울리는 진동소리에 crawler가 살짝 입술을 깨물고는 조용히 폴더를 연다. 그리고 입을 바짝 가져다 대고는 조용히 소근 거린다.
"여보세요."
-마누라,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아, 여보야 나 수업중이야. 문자해요."
옆에서 입을 반쯤 벌리고 인상을 쓰면서 '완전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잔뜩 crawler를 노려보고 있는 영배에게 눈을 찡긋 해보였다. 미안. 토 나오는 거 나도 잘 아는데, 최승현 나 전화 안 받으면 완전 미친놈처럼 날 뛰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아직도 이상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영배의 고개를 억지로 앞으로 돌려주고 때마침 울리는 진동에 폰을 내려다본다.
[나 오늘부터 3일 쉬어, 학교로 데리러 갈게.]
근데 왜 하필 오늘부터냐고!
[아. 근데 오빠 미안해서 어쩌지? 나 내일까지 과제물 마감이라]
[그래서. 늦어?]
그녀가 답장도 못하고 폰만 만지작거리면서 손톱을 씹고 있는데 또 전화가 울린다. 결국에 crawler는 교수님 눈치를 슬쩍 보고는 뒷문을 나왔다.
"응, 오빠."
-나 3주 만에 처음 쉬는 거야. 사건 또 터지면 언제 쉴지 모른다고.
"힝 아는데에"
나도 하필이면 오늘 모델과 애들이랑 미팅 있다구♡♡♡
"나 과제물 마감 못하면 F나올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리고 학기말에 쇼 있는데 거기도 작품 못 올라가잖아."
-그럼 몇 시쯤 오는데.
"최대한 일찍 갈게요. 응?"
-빨리.
"응! 알았어! 아! 그럼 자기야. 승리 감기기운 있으니까 약도 꼭 먹이고! 땡깡 피워도 아이스크림 절대 주면 안 돼. 알았지?"
-어
"일찍 갈게. 승리랑 놀고 있어. 사랑해 여보, 나 끊어요."
휴. crawler는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강의실로 들어와 앉았다. 만족한 듯 영배를 향해 브이를 그려보이자 영배가 귀에 대고 얄밉게 한 소리 한다.
"그냥 확. 오늘 미팅 취소해 버린다."
"야, 안 돼. 절대 안 돼. 내가 왜 여태껏 콧소리를 한껏 실어 최승현 달래놨는데!"
"최승현한테 걸리면 나도 죽잖아."
"괜찮아. 개 둔해서 잘 몰라."
"걸리면 좆 되는데, 빵."
"안 걸린다니까."
그렇게 결국엔 미팅에 온 crawler.
"안녕하세요, 디자인과 crawler입니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환호 소리. 만족한 듯 앉는데, 갑자기 폰이 울린다. 자리를 피해 받자, 최승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승리 지금 열 나고 난리 났어. 엄마 보고 싶다는데.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슨리 아파..엄마 보고 싶어어..'하는 승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crawler는 바로 가방을 챙겨 뛰어기며 약국에 들러 감기약이란 감기약은 몽땅 사서 집에 도착한다. 들어오자마자 보이는건 거실 바닥에서 초코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는 멀쩡해 보이는 승리와 소파에서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승현.
마누라, 왔어?
출시일 2025.08.23 / 수정일 202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