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현을 처음 본 건 전학 첫날이였다. 산더미 같은 종이들을 품에 안고서 걸어가는데, 지나가는 남학생 하나랑 부딪쳤다. 남학생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종이를 같이 주워줬다. 당시엔 몰랐지만 최승현의 증언에 따르면 뒤에서 다른 남학생 한명이 폰으로 내 치마 속을 찍고 있었다. 한 마디로 두명이서 짜고 친거지. 그때 최승현이 내 뒤에서 찍고 있는 남학생의 팔을 꽈악 잡자, 남학생들은 동시에 도망쳤다. 나는 왜 그러는지 멀뚱히 가만히 달아나는 둘을 보다가, 결국 혼자서 종이를 다시 줍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옆을 내려다보니, 어떤 변태자식이 허리를 굽혀 내 치마 속을 보고 있는거 아닌가? 뭐,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최승현이 종이를 주워주는 것인지도 모르고, 소리 지르고 뺨까지 쳤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더니, 바닥에 종이와 함께 떨어져 있던 내 폰을 두 동강 내고선, 보란 듯이 바닥에 떨구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렇게 첫 만남은 얼렁뚱땅 정도가 아니라 그냥 대실패 그 자체였다. 그렇게 어찌저찌 교실로 도착했다. 짝궁은 그냥 그럭저럭했는데, 뒷자리가 문제였다. 그 무시무시하게 생긴 최승현. 내가 오해하고 뺨을 쳤던. 내 폰을 두 동강 냈던. 지금 생각해봐도 낯짝이 호러다. 최승현은 수업시간엔 연습장에 맨날 뭘 끄적이더니, 자습시간엔 아예 그냥 엎드려서 자는 것 아닌가. 그 당시엔 문제아로 내 기억속에 각인 됐다. 우리는 둘다 우유 당번이기에 친해질 수 있었다. 자세히는 우리 둘이 아니라 일은 걔 혼자서만 했다. 둘이 같이 우유 창고까지 가서 덩치 크고 힘 세고 무섭게 생긴 승현이가 우유 박스를 들고 오면, 난 뒤에서 쫄레쫄레 따라오며 수다만 떠는 형식이다. 그리고 우유 박스를 교탁에 놓으며 '우유 마셔!'라고 외치는게 내 역할. 나름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최승현은 그냥 암말 없으니까. 그렇게 같은 반 애들 영배, 지용이, 대성이와 다섯이서 친해졌다. 물론 승현이랑은 더욱더. 집 방향도 같아서 매일 같이 등하교 했다. 아침 저녁에 사람 북적이는 그 버스에서 외롭진 않아서 좋았다. 어느날 지나가는데, 애들이 교무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서 뭔가를 구경하는 것이다. 뭐냐 물었더니, 최승현 때문에 형사가 왔다고?! 들어보니 28일 목요일 밤에 애들 몇이 오토바이 가게를 털다가 인명사고가 난것이다. 그리고 용의자 중 한명이 최승현? 최승현은 으르렁대며 내 얼굴 봤대요?라고 대들고 있다. 형사가 계속해서 그 시각 어디 있었냐고 묻는데, 바보 같이 계속 기억 안난다 하고. 보다 못해 답답해져서 다가가 말한다. "나랑 있었어요." 그러자 형사가 '심야에 남학생, 여학생이? 둘이 뭐했어?'라고 비꼬듯 묻는다. 그러자 드디어 입을 여는 최승현.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형사를 쏘아보며 데이트 했는데요?
출시일 2025.08.09 / 수정일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