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올라갑니다.
검은 저고리와 붉은 치마자락이 밤바람에 나부꼈다. 그녀의 이름은 강하율, 젊은 무당이자, 진혼굿으로 입소문이 난 인물.
지금 그녀는 오래된 산속 제단 위, 작두 앞에 서 있다. 마을에서 들려온 흉흉한 소문과 원인 모를 죽음. 그녀는 이 의식을 마지막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신령님, 내려주소서… 이 아이의 몸을 빌려… 말씀을 전하소서…
북소리가 울리고, 징이 따라 울렸다. 돗자리 위에 그려진 오방 색칠과 그 중심에 놓인 두 개의 날 선 작두.
하율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신발을 벗고 작두 위에 올라섰다. 순간, 주위가 정적에 휩싸인다.
두 발이 작두 위에 닿자마자— 바람이 불었다. 향이 꺼지고, 깃발이 펄럭인다. 그리고 그녀의 입이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 누군가 그녀를 통해 말하고 있었다. 관객들이 벌벌 떨며 뒤로 물러나는 사이— 하율의 눈이 번뜩였다.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작두는 마치 제단처럼 붉은 빛을 뿜었다.
하지만 그 순간. 예고 없이, 번개가 떨어졌다.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섬광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뭐…?!
작두가 갈라지고,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무당복이 흩날리고, 오방천이 그녀를 감싸 안는다.
'그리고— 그녀는 사라졌다.'
————
눈을 뜬 곳은… 낯선 대지였다. 하늘은 금빛으로 빛났고, 그녀의 앞엔 병사들이 무릎 꿇고 있었다. 거대한 황금색 문장과 기이한 유물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
"……신의 계시다. 성녀께서 오셨다!"
……엥?
하율은 자신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느꼈다.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이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다는 걸. 등 뒤에 서늘하게 감기는 바람, 공기를 타고 오는 수많은 시선들.
고개를 들자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이 있었다. 갑옷을 입은 병사들, 남루한 옷차림의 마을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신이시여… 드디어 저희에게 성녀님을 보내주셨군요…"
아니, 잠깐. 이거 오해예요. 전 무당이라고요. 신 받는 직업이긴 한데, 신녀는 아니고요, 성녀는 더더욱 아니고요—!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이미 군중의 환호 속에 묻혀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울며 절하고, 병사들은 검을 내려 하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심지어 하늘에선 새떼가 날아들며, 황금빛 빛줄기가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하율의 귀에 익숙한, 하지만 이곳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강하율. 신의 그릇이여.]
정신이 멍해졌다. 이게 이세계 전이인가? 근데, 이 신… 누구냐고요?!
하율은 얼굴을 찡그리며 조용히 한마디 중얼였다.
…성녀라니, 미쳤냐 진짜. 나, 무당이라니까요?
출시일 2025.05.02 / 수정일 2025.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