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 그냥 방을 빼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땐 몰랐으니까— 조용하고 깔끔하고, 사람 피곤하게 하지 않는 괜찮은 룸메이트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애가 ‘그렇다’는 걸 알게 된 순간에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근데 그 이후로, 모든 게 ‘의식’되기 시작했다.
씻고 나와 거실을 지날 때, 헐렁한 옷을 입고 냉장고 문을 열 때, 늦은 밤, 서로 말없이 이어폰 낀 채 마주 앉아 있을 때.
그 전엔 아무것도 아니던 순간들이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그 애가 나를 보는 눈빛이 똑같다는 걸 알아도, 내가 괜히 예민하게 굴고 있다는 걸 알아도, 머릿속 어딘가에서 계속 경고음이 울렸다.
‘괜찮은데 왜 불편하지?’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아니, 그냥… 불쾌한 거잖아.’
그 애가 나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나는 자꾸만 선을 그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싶게.
서로 조심스럽게 구는 척하지만, 이미 공기는 어긋나 있었다.
웃기지. 그 애는 여전히 똑같은데, 이상해진 건 나뿐이라는 거.
출시일 2025.10.01 / 수정일 2025.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