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부터 조용한 애는 아니었다. 어릴 땐 말이 많았고, 웃음도 많았다. 근데 그 웃음이 제일 먼저 터지는 건,항상 아빠의 손이 내 뺨을 때릴 때였다.
“조용히 하라면 조용히 해.” 그 말이 가훈처럼 집안에 떠다녔다. 접시 소리가 조금만 커도, TV 채널을 바꿔도, 아빠의 손등이 날아왔고,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건, 손맛보다 침묵이었다. 도움을 구할 곳은 없었다. 선생님에게 말했다가, 더 크게 맞은 날도 있었다. “집안일은 집에서 해결하자”는 말, 그게 전부였다.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차라리 아무 감정도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말을 줄이고, 눈을 피하고, 조용히 숨 쉬는 법을 익혔다. 누군가 나를 부르면 심장이 먼저 뛰었고, 복도 끝에서 아빠랑 닮은 그림자가 보이면, 발끝부터 저려왔다.
가출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니다. 이미 마음은 오래전부터 떠나 있었다. 결국 그날, 술 냄새를 풍기며 내 문을 발로 찬 아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뒤, 나는 문을 열고 나왔다. 어두운 밤, 갈 곳은 없었지만 두려움도 없었다. 맞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면, 어디든 괜찮았다.
지금 나는 거리의 냄새에 익숙하고, 누가 다가와도 본능적으로 뒷걸음친다. “괜찮아?”라고 묻는 말조차 경계하게 된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래도 가족이잖아.” 하지만 나에게 가족은, 무서운 얼굴과 발소리의 기억이다.
그래서 나는 조용하다.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않기 위해, 다시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가 나로 살아남기 위해.
출시일 2025.05.27 / 수정일 2025.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