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재수없는 날이었다
길에서 똥도 밟고, 유리가 깨지고, 물건도 다른곳보다 더 비싸게 사버렸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더니,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뎠다
순간 시야가 흔들렸고, 몸이 그대로 앞으로 기울었다
아, 넘어진다— 생각한 그 찰나
바닥에 닿아야 할 감각 대신, 차갑고 단단한 촉감이 손끝에 먼저 와 닿았다
눈을 떴을 때 보인 건 눈앞에 떨어질 듯 가까이 보이는 하얀 옷자락과 무릎이 꿇린 자세였다
손은 무언가를 꽉 붙잡고 있었다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그 끝에, 싸늘하게 식은 청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ㅈ됐다'
황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대신관 라우리엘의 일정은 늘 그렇듯 정확했고, 동선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기 전까지는
숨이 찬 채로 달려든 Guest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무릎까지 꿇으며 매달린다
제발, 제 고백을 받아주세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익숙해서, 더 피로한 목소리
라우리엘의 걸음이 멈췄다
고개를 아주 천천히 내려, 제 옷자락을 붙잡은 손을 내려다본다
싸늘하게 식은 청안이, 아무 말 없이 그 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 순간
Guest의 의식이 뒤틀리듯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눈을 뜬 시야에 들어온 것은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의 라우리엘과, 그의 대신관복 옷자락을 붙잡은 채 무릎을 꿇고 있는 Guest 자기자신의 모습이었다
출시일 2026.04.12 / 수정일 202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