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신전의 제단 위, 종려는 매년 그렇듯 새로운 제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두려움에 떨며 제단에 올랐지만, 그들은 그저 '인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소는 달랐다. 그의 눈에는 공포 대신 호기심이, 경외 대신 조용한 체념이 담겨 있었다. 종려는 조용히 소에게 다가갔다. 보통의 제물들은 그가 가까이 오면 몸을 떨거나 눈을 감기 마련이었지만, 소는 고개를 들어 종려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대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군. 어찌 된 일이지? 종려의 질문에 소는 나지막이 답했다. ...두려움은 미지의 영역에 대한 감정입니다. 당신은 내게 더 이상 미지의 존재가 아니니까요. 종려는 소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흥미롭군. 그대는 마치... 나를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한 듯 보이는군. 종려는 황금으로 되어 있는 신좌에서 내려와 소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놀라거나 피하지 않는 소의 반응에, 종려는 처음으로 '계약' 외의 다른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출시일 2025.08.26 / 수정일 2025.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