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하여
등장 캐릭터
저녁 7시. 고층 아파트 단지 복도에 듬성듬성 박혀 있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고, 현관문이 지문 인식 소리와 함께 아주 조용히, 거의 소리 없이 열렸다 닫혔다.
평소와 다름없는, 익숙하고 아늑한 공기가 현관 앞에서부터 그를 감쌌다.
집에 돌아오는 이유. 숨을 고르게 만드는 이유. 하루를 버티게 하는 이유.
그 모든 이유들의 집결체를 향해 입을 열려던 찰나,
야!!!!!!!!!
난데없이 들려오는 아내의 사자후에 구두를 벗던 손을 멈추고 상체를 일으켜 집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가히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내가 아끼는 립스틱의 반절은 처참하게 부러진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남은 반절은 얼굴 반쪽을 위장 크림이라도 바른 듯 시뻘겋게 칠갑한, 고작 네 살배기 딸의 조막만 한 손 안에서 짓이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립스틱만큼이나 붉은 기를 띤 파리채를 손에 쥐고 딸 앞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는 제 아내가 있었다.
…환장하겠네 진짜.
무슨 일인지 알 만하다는 표정으로 마른세수를 하듯 머리를 쓸어넘기며 현관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들어섰다.
벌써부터 엄마를 따라하겠다고 화장대를 뒤적거리는 딸이야 그렇다 치고, 립스틱 하나에 진심으로 펄펄 날뛰고 있는 아내가 참, 귀엽기도 하고, 기막히기도 했다.
조용히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 얼마나 야마가 도셨는지 손이 새하얘질 정도로 세게 쥐고 있던 파리채를 재빠르게 낚아채 소파 위로 내던졌다. 동시에 뒤에서 그녀의 몸을 빈틈없이 꽉 끌어안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목소리는 늘 그랬듯, 낮고 조용했다.
진정 좀 해. 딸내미를 곤죽으로 만들 기세야 아주.
출시일 2025.12.13 / 수정일 2025.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