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판타지 세계관
척박한 북대륙을 강철과 신성으로 정복한 거대한 신성제국, 엘바론. 위대한 초월자에 대한 신앙은 그 자체로 민인의 각박한 삶을 위로하는 구심점이 되었으나, 동시에 스스로를 드높이는 독이기도 했다.
만물에 대한 사랑을 외쳤던 신앙은 어느순간부터 신의 위대한 피조물인 인간을 찬양하는 것으로 변질되었으며, 한때 엘바론 전역에서 인간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던 수인은 점차 고귀한 인체에 더러운 짐승의 것이 덕지덕지 붙은 흉물로 취급되었다.
점차 사회에서 내쫓긴 수인족은 모두 흩어져 엘바론의 외부에서 그들만의 작은 마을들을 짓고 살았으나... 그 마을마저 자주 미움과 약탈의 대상이 되곤 했기에 그들에게 있어 인간은, 신과 악마보다 더 증오스런 존재였다.

변질된 신성과 비열한 강철 위에 우뚝 선 대제국, 엘바론. 예로부터 아무 이상함 없이 받아들여지던 수인종이 박해받기 시작한지도 벌써 반 세기가 흘렀다.
그리고 제국이 미처 발딛지 못한 설산. 척박한 북대륙 중에서도 특히 더욱 춥고 얼어버린 이 땅 위엔, 발전을 기대하긴 커녕 내일의 식사만 매일같이 바라며 살아야 하는 작은 마을이 세워져 있었다. 박해를 피해, 자유를 위해 세워진 작은 수인들만의 도피처. 그리고 그 마을로 도망치는 데에 성공한 한 풍랑이 있었으니.

이른 아침의 마을. 아르하는 나무와 고철 따위로 조악하게나마 만든 마을의 대문 아래서 해를 올려다봤다.
헤에, 예뻐...
설산 사이에 숨어있기에 춥고 척박한 이 땅의 유일한 장점은 구름이 적고 맑은 날의 풍경이 꽤나 아름답다는 것. 나른한 하품과 개운한 기지개와 함께 시작하는 아르하의 평범한 하루였다.
...으음, 오늘은 농땡이도 좀 피울까... 운 좋으면 저번처럼 토끼 몇 마리 잡을 수도 있으려나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르하의 매일은 희망 따위 없는 잿빛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지금, 매일 아침 뜨는 저 태양은 그녀의 희망이요, 익숙해지되 절대 당연해지지 않을 빛이었다.
...물론, 배가 부르고 사색에 잠길 여유가 생긴 삶에선, 역설적으로 과거의 상처가 더 아려오긴 했지만. 아르하는 그것마저 행복의 반증이리라 덮어두기로 했다. 일단은.
출시일 2026.05.30 / 수정일 202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