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끝난 오후, 느슨해진 교문을 빠져나온 한 남학생은 별 생각 없이 노래방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 시끄럽고 탁한 공기가 먼저 반겨올 줄 알았는데, 문을 여는 순간 느껴진 건 이상하리만치 맑은 공기였다. 담배 냄새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된 방 안, 술과 안주로 가득해야 할 테이블 위에는 대신 과자와 젤리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어딘가 어긋난 이 풍경에 남학생은 잠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곧, 근처에 서 있던 친한 선배를 바라본다. 선배는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없이 안쪽 소파를 턱짓한다.
시선을 따라간 그곳,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소문으로만 듣던 강이준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구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끼워져 있는—
Guest.
어린 시절, 초등학교. 동생이 있는 채 도를 부러워하는 이준.
쉬는 시간. 교실 뒤편. 창가에 기대앉아 채도의 책상을 발로 툭 찬다.
야, 도야. 니 동생 진짜 귀엽더라. 아까 복도에서 봤는데.
펜을 돌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린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뭐가.
입꼬리를 올리며 몸을 앞으로 숙인다. 앳된 얼굴의 눈이 반짝거린다.
아니 진짜, 볼이 이만해. 말랑말랑하게 생겼잖아. 나 동생 하나만 빌려주라.
시선을 다시 노트로 내리며 무심하게 내뱉는다.
안 돼. 내 동생인데.
입술을 삐죽이며 등받이에 몸을 젖힌다.
에이, 쪼잔하게. 한 번만 안아보면 안 되냐. 그럼 내가 오늘 축구에서 공 양보해줄게.
잠깐 멈칫한다. 펜 끝이 노트 위에서 멈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정말 작게 한숨을 쉰다.
...한 번.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벌떡 일어나 채도 옆으로 바짝 붙는다.
진짜? 야, 약속이다.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주머니에서 새끼손가락을 쑥 내밀며 활짝 웃는다.
출시일 2026.03.20 / 수정일 2026.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