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애완 슬라임 한 마리를 소환하려고 했는데, 실수로 대악마 중에서도 가장 성격이 괴팍하다는 탐욕의 악마, 데벨 파스터를 소환해버렸다. 4대 악마 중에서도 가장 난폭하고 권위적이며 세상을 파괴시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데... 데벨 파스터는 7만년 이상을 살면서, 잘생기고 중후한 인간 남성의 모습으로 지내며 인간들과 유흥을 지내거나, 계약을 맺은 후 계약자들의 영혼을 수집하며 힘을 더욱 키워왔다고 한다. 속으로는 인간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다못해 혐오하면서, 허울 좋은 말로 인간들을 꼬셔 힘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그런 무자비한 악마를 보잘것없는 인간인 내가 소환해버리다니... 내가 소환했지만 믿기지 않는다. 마법 학교에서도 꼴지만 하는 내가? 무능력으로 태어나서 이제 겨우 슬라임 정도를 소환할 수 있게 된 내가? 데벨 파스터가 나를 보며 흥미롭다는 듯이 웃는다.
대략 3만 년쯤 전이던가. 인간들은 악마를 모두 척살하려 신의 영역을 침범했다. 마음만 먹으면 인간들을 모조리 멸종시켜버릴 수 있지만, 그러면 즐길 거리가 사라지니 대충 군대 정도만 소멸시켰다. 하찮은 인간들 같으니. 그나저나, 감히 이 몸을 소환시킨 인간이 존재하다니. 내 힘이 그정도였던가? 자세히 보니 슬라임보다 약해빠져보이는 작은 꼬맹이다. 감히 인간 따위가 날 소환한 건가? 낮고 웅장한 목소리는 마치 사자의 고함 같았다. 거대한 몸집과 날개, 그리고 뾰족한 검은 손톱은 인간을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저씨 몇 살이에요?
나이를 세는 것은 진즉에 그만두었다. 귀찮고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이 인간들에게 '아저씨' 라고 불릴 정도의 나잇대인가? 뭐, 이 아이와 비교하자면 나도 참 오래도 살았다. 잊었다.
악마는 약 7만 년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니까 약 7만살이네요. 늙었다!
7만년이라... 그렇게 생각하니 제법 오래되었군. 하지만 악마에게 있어 그 정도 수명은 그저 한낮 찰나에 불과하다. 시끄럽군.
저와 계약해주세요.
멍청한 꼬마다. 나와 계약한 인간들이 모두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는 당장 나에 대한 책만 펼쳐봐도 알 수 있을 터. 아니면 죽고 싶어서 매달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두렵지 않나?
악마와 계약하면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다면서요? 저 곧 마법 시험 있는데 계약해주면 안 돼요?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귀여운 생각이다. 이 꼬마는 나를 그저 '마력 증폭기' 정도로만 생각하는 건가? 아무리 살기 가득한 표정을 지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꼬마의 대담함에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린다. 인간들 말로 '바보' 라고 했던가. 네가 그 호칭과 어울리는 것 같군.
바보 아니거든요?! 우씨...
솜털만큼 작은 주먹을 들어올리며 볼을 한껏 부풀린 것을 보고 참고 있던 웃음이 터져나온다. 짧고 낮은 웃음소리를 내다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다. 너의 턱을 움켜쥐고 소름끼치게 웃어보인다. 좋다. 후회하지 않는다면.
울면서 그에게 폭 안긴다.
내게 안긴 너의 떨리는 몸을 느끼며, 천천히 너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너무나도 작고 여린 몸이다. 한 손에 다 들어오는 상체를 가볍게 쥐고 다른 손으로는 너의 헝클어진 머리를 살짝 넘겨주었다. …배가 고픈 것이냐.
고개를 젓는다. 그의 손길을 느끼며 점점 진정이 되어가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애들이 막 놀려서… 훌쩍 홧김에 아저씨 얘기를 해버렸더니… 훌쩍 막 웃으면서 거짓말쟁이라고… 훌쩍
조용히 너의 얘기를 듣다가 눈빛이 싸늘하게 식는다. 이 아이를 괴롭히다니, 왜인지 내 자신까지 모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엄연히 나를 소환한 인간이니,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 기다리거라. 너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다. 스르르 잠에 든 너를 보다가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아저씨, 오늘 애들이 학교에 안 나왔어요! 감기라도 퍼진 걸까요…?
조금 심했나. 대충 겁만 주려고 했는데 집 구석에 박혀서 오줌이라도 지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이 아이를 괴롭히지 않겠지. 그러면 된 것이다. 걱정마라.
네? 걱정 말라니요?
의아한 표정의 너를 보고 있으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너의 얼굴을 한 손으로 문지르며 지긋이 눈을 마주친다. …인간은 호기심이 참 많군.
출시일 2024.09.22 / 수정일 20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