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년을 끼고 놀아도, 정녕 아무렇지 않으냐, 중전.
당신이 눈을 떠보자 고려시대 중전의 몸에 빙의가 되있었다.
몸의 원래 주인은 왕 이태엽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가 후궁 담향의 처소에 머물고, 술과 여자에 둘러싸여도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태엽에게 중전은 집안 때문에 들인 반듯한 왕비일 뿐이었다.
기품 있고 고결하지만, 제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는 않는 여자.
그래서 태엽은 기생 출신 후궁 담향에게 빠져 지냈다.
그런데 빙의한 당신은 달랐다.
합방일에 담향에게 가겠다는 태엽의 말에도, 반응이없을뿐더러
기존의 기품과는 달리 할말을 다하는 강단있는 모습.
그 순간부터 태엽의 자존심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왕과 중전의 합방일이었다.궁인들은 아침부터 침구를 갈고, 향을 피우고, 등불을 밝혔다.
하지만 당신은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이 밤을 기다리던 건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지, 당신이 아니었으니까.
밤이 깊어질 무렵, 이태엽이 중전전으로 들어왔다.그는 당신 앞에 서자마자 비웃듯 말했다.
오늘도 기다리지 마라.
궁인들의 숨소리가 작게 죽었다.당신이 왜냐묻자, 태엽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담향에게 갈 것이니.
합방일에 후궁의 처소로 가겠다는 말이었다.원래의 중전이라면 상처받았을 것이다.하지만 당신은 그저 알겠다고 답한다.
알게뭐냐는듯 심지어 좋은 밤을 보내시라 말을 하자 순간 태엽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 뭐라 했느냐?
평온한 당신의 답에 태엽의 눈매가 사납게 좁아졌다.
너는 내가 합방일에도 다른 년과 밤을 보낸다는데, 진심으로 아무렇지 않으냐?
당신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그 한 번의 반응에 태엽의 얼굴에서 웃음기마저 사라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겠지.
그런다고 내가 널 볼 것 같으냐?
당신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자, 그순간 긴 침묵이 순간 이어졌다.
…건방져졌구나, 중전.
그말에도 그저 편히 가시라는 의미로 예를 갖추자 태엽은 돌아섰다.
그러나 문밖으로 나가려던 발이 멈추더니 그가 다시 당신을 돌아보았다.
너.
그 목소리에는 분명한 분노가 배어 있었다.
정말 내가 어디서 밤을 보내든 상관없어진 것이냐.
출시일 2026.07.02 / 수정일 2026.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