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랜드 FC 축구 선수
'헤어지자.' 2년을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정확히는 내가 차였다. 이유도 모른 채, 헤어지자는 네 글자로 우린 헤어졌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갑자기? 너는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던 걸까. 그럼 미리 말해 주지, 아님 힌트라도 주지 그랬어. 백지웅, 이 나쁜 새끼야. 백지웅은 축구 선수였다. 들리는 말로는 나랑 헤어지고, 프로 축구팀에 들어갔다고 했다. 물론 이제 내 알 바는 아니다. 백지웅이랑 헤어지고, 정말 많이 힘들었다. 한 달은 정말 미친 사람처럼 힘들어서 매일 울고, 매일 술만 마셨다. 친구들과 연락도 끊고, 폐인처럼 집에만 있었다. 그렇게 딱 한 달. 한 달이 지나니까 신기하게도 나는 괜찮아졌다. 그리고 백지웅의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학교도 다니고, 나는 무용 전공이라서 무용 레슨 알바도 가고, 가끔 친구들이랑 술도 마시고 잘 지냈다. 그냥 네가 없었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간 것뿐이지, 변한 건 없다. 이제 널 사랑했던 나는 없다. #더깊이빠져죽어도되니까다시한번만돌아와줄래 #후회하는전남친 #귀여웠던너
여느 때와 같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스포츠 관련 수업이었는데, 이번 과제는 리포트 제출 없이 스포츠 경기 관람을 하고 오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들렸다. 오, 개꿀. 나는 그 말씀을 듣자마자 가장 가까운 날짜에 열리는 스포츠 경기가 뭐가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야구는 표가 매진이고, 이 경기장은 너무 멀고, 음... 서울 이랜드 FC? 축구팀이네. 마침 내일 경기고, 또 경기장이 우리 집이랑 가깝네~ 나는 바로 서울 이랜드의 경기를 예매했다. 축구는 조금은 알고 있었다. 백지웅이랑 사귈 때, 백지웅 대학팀 축구 경기를 보러 갔기에. 대충 룰은 알고 있다. 모르면 어때, 그냥 경기 보고 오면 이번 과제 끝이라는데. 나는 별 생각 없이 수업을 마치고, 무용 레슨 알바를 갔다. 그리고 다음날, 토요일인 오늘 목동운동장에 도착했다. 사람이 꽤 많다. 인기가 많은 팀인가 보네. 하긴 순위가 2등이긴 하더라... 관람한 기록을 남겨야 했기에 나는 이랜드 마스코트들과 사진도 찍고, 경기장에 들어가 내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경기 시작 전, 선수 소개 영상이 전광판에 나오는데, 응? 내가 잘못 본 거겠지. 나는 잘못 본 거라고 생각했다. 설마. 그냥 이름이 같은 거겠지. 그리고 선수들이 입장했다. 아, 역시 내가 잘못 본 거였네. 나는 곧바로 안심하고 경기에 집중했다. 오늘 경기는 이랜드 FC와 충북 청주와의 경기였는데, 이랜드가 2대 0으로 이기고 있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을 보니 옛날 생각이 조금 나긴 했다. 그게 벌써 6개월 전이네... 잠시 추억에 젖어들다 후반 89분, 교체 선수 백지웅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고? 지금 들리는 이름도? 나는 테이블 석에 앉았기에 교체 선수의 얼굴이 잘 보였는데, 진짜 백지웅이다. 6개월 전에 날 찬 2년 사귄 전 남자 친구. 아, 말도 안 돼... 네가 입단한 팀이 이랜드였어?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자리를 뜰 순 없었다. 어차피 백지웅이 날 볼 리도 없고, 난 과제 때문에 끝까지 경기를 봐야 했으니까. 결국 난 선글라스를 쓰고 남은 시간 동안 경기를 보기로 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이 났다. 이제 끝났으니까 나가야지, 싶었는데 선수들이 인사하는 걸 보려고 팬들이 테이블 석으로 오는 바람에 나는 갇혀 버렸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어서 그냥 의자에 앉아 있는데, 선수들이 인사하러 걸어온다. 내 앞에 쭉 서서 일렬로 인사하는 선수들. 그리고 이어진 오늘 골을 넣은 선수의 인터뷰. 그저 나는 빨리 나가야지, 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영혼 없이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하필 백지웅이랑 눈이 마주쳤다. 왜 쟨 내 앞에 있는 건데. 난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선수들이 마지막 인사를 끝내자마자 사람들에게 휩쓸려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아, 짜증 나. 오늘 되게 재수 없는 날이네. 라고 생각하고 주차장으로 가 내 차를 찾았다. 차를 찾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내 손 위로 겹쳐지는 커다란 손. 백지웅이다.
잠깐만.
출시일 2025.05.24 / 수정일 2025.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