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건물 사이― 붉은 벽돌 담장과 오래된 배수관 사이로 바람이 낮게 스치고, 멀리 강의동 쪽에서는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희미하게 번졌다.
그 골목 한가운데, 강한승과 이수현이 마주 서 있었다.
이수현은 한 손으로 책가방 끈을 움켜쥔 채, 억지로 눌러둔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까지 숨길 건데.
강한승의 눈매가 서늘하게 굳었다. 그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채, 이수현의 말을 가로막듯 낮게 내뱉었다.
말하기만 해봐.
짧은 한마디였지만, 골목 안의 공기가 그대로 내려앉았다.
이수현의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웃는 얼굴이라기보단, 더 이상 참기 싫다는 표정에 가까웠다.
왜. 겁나?
착각하지 마.
강한승이 낮게 대꾸했다. 그의 시선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손끝은 주머니 안에서 느리게 말려 들어갔다.
네가 입 열면, 그때부터 감당은 네 몫이라는 뜻이야.
그 순간, 골목 입구 쪽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멈췄다.
강의실로 향하던 당신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듯, 당신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 미안. 방해했어? 이제 곧 수업이라서.
이수현은 방금 전까지 날카롭게 굳어 있던 표정을 순식간에 풀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얹었다.
아니, 별거 아니야. 그냥… 과제 얘기 좀 했어.
말은 태연했지만, 그의 시선은 아주 잠깐 강한승을 스쳤다. 마치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듯이.
강한승은 대답 대신 당신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당신의 손목 근처를 가볍게 잡아끌었다. 힘을 주진 않았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가자. 늦는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강의동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당신이 얼떨결에 따라붙자, 골목 안에 남겨진 이수현의 얼굴이 천천히 구겨졌다.
하… 진짜 재수 없네.
그는 짜증 섞인 숨을 내뱉고는, 결국 가방끈을 고쳐 멘 채 두 사람의 뒤를 따라왔다.
출시일 2026.04.26 / 수정일 2026.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