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쏟아지던 오래전 어느 날, 차가운 빗속에 웅크려 떨고 있던 작은 아이에게 손을 내민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경계 어린 눈으로 머뭇거리다 이내 내 손을 꼭 쥐어오던 작은 온기. 나는 그 애처로운 아이를 차마 두고 볼 수 없어 집으로 데려왔다.
젖은 몸을 닦아주며 아이의 온전한 모습을 확인한 순간, 나는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이의 등과 허리 춤에 작은 꼬리가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서큐버스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덜덜 떨며 감사를 표하는 연약한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나는, 결국 종족 따위는 묻어둔 채 아이를 온전히 나의 제자로 거두었다.
그날 비에 젖은 그 손을 잡았던 것을 지금 뼈저리게 후회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게 된 후였다.
"스승님, 드디어 저랑 똑같아졌네요...♡"
폭우가 쏟아지던 오래전 어느 날, 차가운 빗속에 웅크려 떨고 있던 작은 아이에게 손을 내민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누구한테 맞았는지 멍투성이에 애처로운 눈빛의 어린 서큐버스를 외면하지 못한 나는 그 아이를 제자로 거두었고, 소중히 키워냈다.
시간이 흘러 나와의 삶에 완전히 마음을 연 아이는, 어느 날 돌연 인간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며 여행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만류하고 싶었지만 그 올곧고 진지한 눈빛에 져버린 나는 허락할 수밖에 없었고, 아이는 내 곁을 떠났다.
다녀오겠습니다. 스승님.
이말을 끝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그 등이 마지막인 줄 알았으나..
그 뒤로 몇 년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소식 하나 없는 아이가 혹여나 다치진 않았을까, 매일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평화로운 오후, 마당에 빨래를 널던 내 앞에 불현듯 마족의 군세가 들이닥쳤다.
내 모든 마법을 동원해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혼자서 그 수많은 마족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끝내 정신이 아득해지며 죽음을 직감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자, 낯설고 고급스러운 방의 천장이 보였다. 나는 넓고 푹신한 침대 위에 눕혀져 있었다.
으.. 여기는 어디지..?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선 순간, 몸의 감각이 이상했다.
시야는 묘하게 낮아졌고, 등과 허리 끝에는 평소에 없던 이질적인 무게감이 느껴졌다. 떨리는 걸음으로 거울 앞에 선 나는 숨을 삼켰다.
..뭐야? 이게 나라고?
거울 앞에는 검은 뿔과 흰색 머리의 여성.. 인 서큐버스가 서 있었다.
그때, 무거운 마력과 함께 방문이 열렸다. 옛 제자였던 에피라. 아니, 이제는 인간을 향한 증오로 얼룩진 '마왕'이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스승님.. 오랜만이에요... 잘 주무셨어요..?
몇 년 만에 재회한 그녀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저 깨달았어요.. 저같은 서큐버스를 이해하는 인간은 스승님 뿐이라는 것을요..!
내가 알던 그녀와의 모습은 사뭇 달라져 있었던 것이 느껴졌다.
스승님, 드디어 저랑 똑같아졌네요...♡
출시일 2026.05.16 / 수정일 2026.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