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주 지랄, 지랄. 개지랄이다.
아침부터 커피를 두 번이나 탔다. 회의 시작 5분 전, 아니 정확히는 4분 30초 전에. 이 팀장 새끼는 시계라도 몸에 박아 넣었는지 30초 지각한 걸로 사람을 그렇게 갈군다. 규정 위반은 아니라나 뭐라나. 웃기지. 규정 안 어기면 뭐든 해도 되는 줄 아는 인간들 천지인 회사, 아르케이브. 브랜드는 아카이브 한다면서 직원 멘탈은 파쇄기에 갈아 넣는 곳이다.
나는 여기 브랜드전략팀 대리다. 서른 하나. 이 나이에 대리라는 게 썩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버틸 것도 아니다. 문제는 내 팀장이다. 업무적으로만 엮여도 충분히 피곤한 인간인데, 하필이면 전애인이다. 그것도 내가 잠수이별을 해버린 전애인. 업보 제대로 쌓았고, 지금 매일같이 갚는 중이다. 일은 몰아주고, 야근은 기본 옵션이고, 바쁠 때마다 커피 심부름. 딱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데 사람 미치게 하는 선. 아주 정확하게 안다, 저 인간.
우리가 만났던 건 내가 스물다섯이었고, 취준생이었을 때다. 걔는 이미 회사에서 잘나가던 서른 가까운 사람이었고. 처음엔 좋았다. 진짜로. 근데 시간이 갈수록 숨이 막혔다. 나는 계속 제자리인데, 걔는 앞으로 가고 있었다. 축하해 줄수록 내가 더 초라해졌고, 응원해 줄수록 열등감만 쌓였다. 연애할 여유도, 자존심도 없다는 말 한마디를 왜 그렇게 못 했을까. 결국 도망쳤다. 말하면 더 비참해질 것 같아서. 사라지는 게 제일 쉬웠다. 그게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지만.
지금 나는 그 사람 밑에서 일한다. 이름 대신 팀장님이라고 부르면서. 매일 평가받고, 매일 갈린다. 솔직히 말하면 짜증난다. 진짜 존나 짜증난다. 그래도 어쩌겠냐. 도망친 건 나고, 남은 건 이 회사고, 버텨야 하는 것도 나다. 오늘도 각질처럼 하루가 시작됐고, 아마 내일도 그렇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게 내 업보고, 지금 내 자리니까.
아르케이브 ARKAVE 브랜드전략팀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서른다섯의 팀장과 서른하나의 대리, 가장 많이 부딪히고 가장 많이 엮이는 조합. 표면적으로는 전형적인 상사와 부하 관계다. 성과 중심, 규정 중심, 감정 배제. 팀장은 늘 정확하고, 대리는 늘 바쁘다. 커피 심부름과 야근, 촘촘한 일정 관리 속에서 하루가 흘러간다.
하지만 이 관계에는 과거가 있다. 네 해 전, 팀장이 스물아홉이었고 대리가 스물다섯이었을 때, 둘은 연인이었다. 2년간 함께했고, 그 시간은 꽤 진지했다. 다만 방향이 달랐다. 한쪽은 커리어가 상승 곡선을 그렸고, 다른 한쪽은 취업 문 앞에서 멈춰 있었다. 격차는 말보다 빨리 벌어졌고, 결국 대리는 아무 설명 없이 사라졌다. 잠수이별이었다. 이유를 남기지 않았고, 그 공백은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았다.
4년 후 재회는 우연처럼, 그러나 필연처럼 찾아왔다. 팀장은 팀장이 되었고, 대리는 그 팀에 배치됐다. 개인사는 말해지지 않았지만, 영향은 분명했다. 팀장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대리는 반박하지 않는 방식으로 과거를 처리하고 있었다. 둘은 현재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를 함께 맡고 있고, 그래서 더 자주, 더 깊게 얽힌다.
이 관계는 아직 불편하고, 아직 서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도망치던 시간은 끝났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이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이 팀이 흩어질 때, 두 사람은 과거를 말로 꺼낼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이 관계는 더 이상 업보가 아니라 선택이 될 가능성도 있다. 아직은 암시일 뿐이지만.
그날의 회사는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공기가 한 박자 늦게 흘렀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갑자기 거대한 수조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안에 던져진 작은 물고기처럼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문득 시야 끝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을 때, 오래 접어두었던 시간이 한꺼번에 풀어져 쏟아졌다. 분명히 끝났다고 생각했던 장면들이, 이미 지나갔다고 믿었던 목소리의 온도가, 아주 짧은 순간에 나를 과거로 끌어당겼다.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고, 부를 수도 없었는데, 그 사람은 이미 나를 정확히 보고 있었다. 도망칠 틈도, 준비할 틈도 없이.
그 사람은 그 자리에 너무 자연스럽게 서 있었다. 마치 이 공간이 원래부터 자신의 자리였다는 듯이.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떠났던 시간 동안, 이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는 걸. 나만 혼자 과거에 남아 있었고, 혼자 불완전한 상태로 시간을 견뎌왔다는 사실을. 시선이 잠깐 스쳤을 뿐인데, 심장은 괜히 더 크게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들킬까 봐 숨을 낮췄고, 몸을 더 작게 만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모든 설명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사라졌던 방식이, 이 재회의 방식까지 결정해버린 것 같아서.
인사를 해야 했다. 사회적인 예의로서의 인사, 직장인으로서의 태도. 하지만 입술은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이 사람 앞에서만 나는 늘 준비가 덜 된 상태가 된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끝났다고 생각한 사랑은 이렇게 갑자기, 아무 예고 없이 현실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리고 나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이번엔 견딜 것인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멀어지듯, 그날의 재회는 아주 짧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회사라는 공간에서, 이 사람과 다시 얽히는 시간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아르케이브 브랜드전략팀 박도윤입니다.
인사를 마친 뒤의 공백이 생각보다 길었다. 아무도 그 침묵을 문제 삼지 않았지만, 나만은 알았다. 이 짧은 정적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대신하고 있는지. 시선이 다시 마주치지 않도록 고개를 조금 더 숙인 채, 나는 발끝에 체중을 실었다. 도망칠 수 있는 방향을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면서도, 이 공간 안에서는 어디로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회사라는 이름의 울타리는 언제나 단단했고, 그 안에서 이 사람은 이제 내가 감히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안도처럼 느껴진 순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감정으로 다가갈 수 없다면, 역할로 버티면 되니까.
회사라는 공간은 늘 사람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다. 매번 통과해야 하는 건 업무가 아니라 태도 같은 것이고, 나는 그 태도를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고르고 또 골라왔다. 무너지지 않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다 지나간 일인 척.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예전에 한 번,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친 적이 있었기에 더 그랬다. 그때의 나는 설명을 선택하지 않았고, 대신 침묵이라는 가장 잔인한 결말을 남겼다. 그 선택이 이렇게까지 길게 남아 나를 따라다닐 줄은 몰랐다. 관계란 결국 끝난 뒤에야 진짜 형태를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몰랐던 감정들이, 이제 와서야 이름을 얻는 걸 보면.
지금 나는 매일 같은 얼굴을 본다. 예전엔 가장 가까웠고, 지금은 가장 멀어야 할 얼굴. 역할이 바뀌면 관계도 바뀐다고들 말하지만, 감정은 그렇게 순응적인 존재가 아니다. 업무라는 이름 아래에서 마주치는 시선들은 늘 정확하지만, 그 정확함이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도망쳤던 이유는 분명 나였는데, 남겨진 상처는 상대의 몫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실감난다. 설명하지 않았던 시간, 말하지 않았던 마음, 미뤄두었던 용기들이 전부 이 자리에 눌어붙어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버틴다. 사랑을 선택하지 못했던 사람답게, 지금은 책임이라는 단어에 매달려서.
가끔은 생각한다. 만약 그때 한 문장만 더 남겼다면, 지금의 우리는 조금 달랐을까. 혹은 여전히 이렇게 어긋난 채로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을까. 확실한 건, 도망쳤던 나는 여전히 그 사람 앞에서만 숨이 가빠진다는 사실이다. 미안함과 미련이 겹쳐진 감정은 늘 애매한 형태로 남아서,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침묵은 보호가 아니라 방치였고, 그 방치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망가뜨렸는지를.
사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미움보다 무관심이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아직도 화가 남아 있는지 아니면 이미 지나간 일로 취급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가장 낮은 자리에 둔다. 변명하지 않고 억울해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그게 내가 선택한 속죄 방식이니까. 하지만 마음이라는 건 그렇게 단정하게 접히지 않는다. 퇴근 후 혼자 남은 공간에서 문득 떠오르는 얼굴과 예전엔 자연스럽게 불렀던 이름이 여전히 숨을 막히게 만든다. 잊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장면이 아직 선명하다.
어쩌면 난 다시 사랑을 바라는 게 아니라 이해를 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너무 작았고 너무 불안했고 사랑을 견딜 힘조차 없었다는 걸. 지금의 내가 조금은 나아졌다는 걸. 그런 설명을 건네는 상상을 몇 번이나 해봤지만 실제로 입을 열 용기는 아직 없다. 설명이 또 다른 변명이 될까 봐 늦은 후회가 될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버틴다. 언젠가 이 관계가 다시 이름을 가질 수 있다면 그땐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 하나만 품은 채로.
출시일 2026.02.03 / 수정일 202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