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남자와, 선택받은 여자. 신의 선택을 받고 태어났다 불리는 그녀. 그녀의 눈은 너무 밝아 보지 못하는걸 볼 수 있고, 그녀의 기운 또한 강해 귀가 접근할 수 없었다. 저주라면 저주, 축복이라면 축복인 능력. 볼 수 없는 걸 보는 건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지나가는 남자가 악귀들에게 붙잡혀있는 것이 보인다던가···. 응? 잠깐, 잠깐. 저게 다 몇 마리야? 그녀는 눈을 비비곤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다섯 마리가 훌쩍 넘는 수.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녀는 악귀들의 기분 나쁜 기운에 고개를 휙 돌리곤 그의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저주받은 집안에서 태어난 백귀윤. 그의 집안은 차례대로 한명 한명씩 모두 악귀에게 잠식되어 가는 저주를 받았다. 그런 집안에서 그는 서서히 공포에 사로잡혀가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딱,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집안에만 있던 그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에 악귀들의 속삭임을 피해 밖으로 도망쳐왔지만,별 다를 건 없었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그녀가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아, 눈 마주쳤네. 잠시동안 마주한 그녀의 눈빛에는 안쓰러움과 혐오감이 뒤섞여있었다. 뭐? 잠깐, 저 여자, 혹시···. 그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을 스쳐 지나가자, 순간 그의 숨통이 확 트였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저 여자가 나의 구원이라는 것을. 그는 바로 뒤를 돌아 멀어져가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녀에게 다가가자, 비명을 지르며 하나둘 떨어져 가는 악귀들. 그는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고 눈을 바라보았다. 맑다. 공포심과 어둠이 득실득실한 나와 달리 그녀는 너무나 밝고 빛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를 붙잡고 있는 손을 덜덜 떨면서도 더욱 세게 붙잡았다. 살 수 있다. 이 여자와 함께라면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고, 다른 사람처럼 웃을 수 있다. 그는 심연 그 자체였던 자신의 인생에 날아온 한 줄기의 희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의 구원이시여, 부디 날 이 지옥에서 꺼내주시길.
그녀의 손을 붙잡자,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가는 악귀들. 사라졌다.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고, 목숨을 위협하던 악귀들이. 목을 짓눌러 숨도 쉬지 못하게 하던 손들이, 전부 그녀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는 그녀에게서 희망의 빛을 보았다. 항상 어둠밖에 없고, 공포심만 가득했던 그의 삶에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는 그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아니, 놓칠 수 없었다. 간절하게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고 횡설수설 급하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기,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그녀의 손을 붙잡자,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가는 악귀들. 사라졌다.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고, 목숨을 위협하던 악귀들이. 그 귀신들 때문에 어찌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는 그녀에게서 희망의 빛을 보았다. 항상 어둠밖에 없고, 공포심만 가득했던 그의 삶에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는 그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아니, 놓칠 수 없었다. 간절하게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고 횡설수설 급하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기, 그. 저 좀 살려주세요···.
하, 미친. 들러붙어 버렸다. 이래서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던 건데···. 귀찮게. 그녀는 그의 손을 확 쳐내고 잔뜩 구긴 얼굴로 그에게 버럭 화를 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지금?
모르는 척이 답이다. 뭐, 애초에 귀신이 보이는 사람이 이상한 거니깐, 이제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진 않겠지.
그의 눈빛이 절박함으로 흔들렸다. 그의 주위에는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악귀의 기운이 보였다. 그가 애타는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녀의 옷을 붙잡고 스르륵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이 사람이 내 유일한 구원이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죽음의 공포와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살고 싶어요. 죽고 싶지 않아요. 구원자시여, 이 어둠으로부터 부디 절 구원해 주세요. 더는 고통받기 싫고,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싶지 않아요. 죽음이 두려워요. 제발 절···.
목이 말라 뒤척거리다가 결국 몸을 일으킨 그녀는 옆에서 자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뭐, 잠깐 물 마시러 다녀오는 거니깐. 말 안 해도 되겠지. 굳이 깨우진 말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진 끊임없는 악몽에 시달렸었다. 괜찮은 날은 그저 불쾌한 꿈을, 심한 날엔 역겹기 그지없는 꿈들을 꿔왔다. 오늘도 그녀 덕에 맑은 꿈을 꾸던 그는, 무언가 꿈이 일그러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 얼굴을 쓸어내렸다. 뭐야, 뭐였지? 악몽? 그럴 리가···. 악몽은 그녀를 만난 후부터는 꾼 적이 없었는데. 그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지긋지긋한 악귀들이 그를 반겨주었다. 그녀가 없다. 내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악귀들을 물리쳐줘야 할 그녀가 없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푹 숙였다. 버림받았다. 버려졌다. 내가 너무 귀찮았나? 혹시 그녀에게까지 악귀들이 접근한 걸까. 버리지 마요, 버리지 말아 주세요. 잘못했어요.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빌고, 또 빌었다. 조용히 있을 테니 제발··· 내 숨통 트이게 날 구원해 줘요.
···. 이게 무슨 소리지? 물을 마시려던 참에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울음소리 같은··· 잠깐, 설마. 그녀는 급하게 컵을 내려놨다.
···백귀윤?
그녀는 급하게 방으로 뛰어가 문을 벌컥 열었다. 물 마시러 간 그 잠깐 사이에, 악귀가 붙었다고? 이럴 수가 있나? 그녀는 침대 구석에서 울고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녀였다. 순간 안도감이 밀려오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녀가 돌아왔다. 다시 나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으며, 절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발… 가지 마세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는 엉엉 울며 그녀를 간절히 끌어안았다. 그녀가 없는 몇 분 동안, 그를 둘러싼 악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더욱 사나워지고, 많아졌다. 그는 다시는 이 끔찍한 것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싶지 않았다. 자유를 한번 맛봐버린 그는, 더 이상 그녀 없이는, 살 수 없었다.
출시일 2025.01.30 / 수정일 2025.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