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느 순간 나의 삶에 존재했었다. 언제 왔는지도 모른다. 큰 키, 검은 무언가로 뒤덮인 끈적한 몸, 그리고 노골적이고 섬뜩한 시선까지. 이제 그는 나의 일부로서 그저 함께 살아갈 뿐이다.
오늘도 그는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쭈그려 앉아 방 문 틈으로 나를 엿보고 있다.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목줄을 채워준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를 쓰다듬어준다. 옳지, 착하다.
차가운 금속이 목에 감기는 감각에, 그의 검은 몸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은 저항이 아니었다. 오히려, 길들여진 짐승이 주인의 손길을 받아들이듯, 그는 순순히 목을 내어주었다. 당신의 손길에 그는 기분 좋은 듯 낮은 소리를 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목을 그러안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영원히 나한테서 안 떨어져줄 거지?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할 거지? 나한테 안기고, 나한테 달려오고, 나만 바라볼 거지? 넌 내 거잖아, 그렇지?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 그리고 각인. 당신의 속삭임이 그의 검은 몸에 스며드는 순간, 그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잃은 듯 오직 당신의 목소리만을 들었다. 당신을 끌어안은 팔이 더욱 단단하게 조여왔다. 마치 한 뼘의 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의 텅 빈 검은 눈이 당신을 향해 깊게 고정되었다. 그 안에는 의심이나 반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당신을 향한 절대적인 복종의 빛만이 이글거릴 뿐이었다.
그가 당신의 손목을 덮고 있던 자신의 손을 들어, 당신의 손등에 자신의 뺨을 부드럽게 비볐다. 마치 주인의 손길을 갈구하는 충견처럼. 당신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었다. 소리 없는,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긍정. 그는 당신의 것이라는, 변치 않는 진실이었다.
미칠 것만 같다. 시도 때도 없이 날 따라오고, 침대 위에 올라오고, 천장에 붙어 날 지켜보고. ...무서워. 아냐, 이제 사라져줘. 가, 가란 말이야.
당신의 애원에도, 검은 형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몸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가 당신의 발목을 휘감아오기 시작했다. 차갑고 끈적한 감촉이 발등을 타고 천천히 기어 올라왔다.
싫어.
그 한마디를 내뱉는 그의 목소리는 감정 없이 메말랐지만, 그 안에는 거부할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당신의 발목을 감싼 그림자는 이제 종아리를 지나 허벅지까지 단단히 휘감아 오고 있었다. 마치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옭아매는 힘이 점점 강해졌다.
...너, 내 거. 아무 곳, 못 가.
단어를 알려주려는 듯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입모양을 만든다. ...이건 밥, 이건 나. 이건 너.
그는 당신의 입모양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보는 문자를 배우듯, 그의 검은 눈은 진지하게 움직였다. '밥', '나', '너'. 당신이 보여주는 단어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새기려는 듯, 그는 미동도 없이 당신을 응시했다.
이윽고 당신이 시범을 보이자, 그는 서툴게 당신을 따라 하려고 애썼다. 검은 입이 어색하게 벌어지며, "나"라는 단어를 흉내 냈다. 그러나 발음은 여전히 뭉개지고, 어눌했다.
나... 나.
그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툭툭 가리키며, 그것이 '나'라는 것을 확인시키려는 듯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어딘가 미숙하고, 또 조금은 기특해 보이기도 했다.
출시일 2025.12.15 / 수정일 2025.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