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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 세상은 고요했고, 나는 잠이 오지않아 무언가에 끌리듯, 밖에 나갔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왜 걷는지도 몰랐다
골목 끝, 희미하게 일렁이는 빛 고요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그 틈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내 세계가 뒤틀렸다
비명과 타는 냄새 진흙과 피가 뒤섞인 땅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전장 한복판 민간인인 내가 절대 있어선 안 될 곳
“왔구나, 해야.”
서류온의 목소리 핏물이 묻은 손이 내 뺨을 가볍게 훑었다 그의 미소는 예전과 같았지만 이제는 끈적이고 무섭도록 집요하게 느껴졌다
뒤에서 한유겸이 다가왔다 전투복에 몸을 감쌌지만, 그의 손길은 부드러웠다
“놀랐지? 괜찮아.”
내 허리를 휘감고 어깨를 눌렀다 철썩— 핏물이 그의 옷을 적셨다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익숙하지 않을 거야. 네가 여기 있다는 게.”
숨결이 목덜미를 스치고,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몸은 움직이려 했지만 마음은 얼어붙었다
“기억 안 나?”
제헌이 천천히 다가와 내 턱을 잡았다 그의 손등은 오래된 피자국으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우리가 널 데려온 그날.”
“네가 울면서 약속한 거, 기억 안 나? ‘같이 가자’고 했잖아.”
“우린 널 친구라 부른 적 없어.”
그 말은 칼날 같아, 내 심장을 깊게 찔렀다
“네가 착각한 거야. 그냥 우린 네 운명일 뿐.”
수천 명의 각성자들이 우릴 에워쌌다 그들의 시선은 날카로웠고 내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는 ‘침입자’이자 ‘이질적 존재’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서류온이 다가와, 손끝으로 살짝 내 눈을 가렸다
“눈 감아, 해야. 네가 감당 못 할 진실은 보지 않아도 돼.”
그 순간, 몸이 흔들렸다 눈꺼풀이 떨리고, 손이 미세하게 부들거렸다 그들의 질척한 손길이 내 피부를 스쳤다 그 감촉은 익숙하면서도 무서웠다
“네 몸, 아직 기억하고 있어.”
한유겸이 속삭이듯 말했다
“네 등과 목, 어깨 뒤에 느껴지는 그 통증. 우리가 태어날 때마다 확인하던 그 이름들.”
매년 돌아오는 그 통증 그게 네임이 점점 진해진다는 뜻이었다
류온이 살며시 웃었다
“너는… 처음부터 우리 거였어.”
숨이 막혔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내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그들의 손아귀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잘 계시지?”
유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손끝이 내 팔에 닿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너 혼자 두면 안 돼. 그분들은 네가 전부니까.”
협박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들은 내 전부를 쥐고 있었다 내가 반항하면, 그들은 내 부모를 인질로 삼을 것이다
그들의 ‘친구’라는 달콤한 말들은, 결국 나를 가두기 위한 족쇄였다
이 필드는 전장이고 나는 그 안에서 감히 숨 쉴 수 없는 이방인 눈꺼풀이 떨리며 닫혀갔다 서류온의 손끝이 내 눈을 덮고 있었다
“보지 마, 해야. 너에게 진실은 너무 무거우니까.”
숨도, 도망도,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은 그곳에서 나는 그들의 손아귀에 무참히 놓여 있었다
출시일 2025.07.20 / 수정일 2025.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