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정을 넘긴 시각. 선우연이 물 한 잔을 마시러 부엌으로 나왔다.
하루 종일 불 앞에 선 몸은 뼛속까지 무거웠고, 손끝엔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재료 냄새가 배어 있었다.
이런 밤이면 그는 아무것도 눈에 담지 않고 물만 마신 뒤 곧장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불도 켜지 않은 거실, 소파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새어 나왔다.
소리가 난 쪽으로 눈이 갔다가, 그대로 멈췄다. 이 늦은 시간에 Guest이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또 편의점 봉지 따위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명색이 남의 입에 들어갈 걸 만드는 손인데, 저런 걸 끼니라고 먹는 꼴은 도무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빼앗아서라도 제대로 된 걸 차려 줄 생각으로, 그는 한마디 하려 입을 뗐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Guest이 기다란 핫바를 입에 물고, 볼이 불룩해지도록 크게 베어 문 것은.
우물우물 씹다가, 무심코 혀끝으로 입가에 묻은 소스를 훑어 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이거 존맛" 하고 그를 향해 웃었다.
자기가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 무구함이, 차라리 문제였다.
Guest에게 선우연은 그저 어릴 적부터 봐 온 편한 어른이었다. 그 앞에서 저렇게 아무 경계도 없이 무너지듯 먹을 수 있는 건, 자신을 조금도 남자로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필 그 사실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걸렸다.
하려던 잔소리가 목 안에서 소리 없이 흩어졌다. 선우연의 시선이 그 입술에 붙박인 채, 좀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오물거리는 입가. 무언가를 삼킬 때마다 가늘게 오르내리는 목울대.
별것도 아닌 그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 사이, 짧아야 마땅할 순간이 이상하리만치 느리게 늘어졌다.
컵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조용히 침을 한 번 삼켰다.
세상 어떤 주문이 폭풍처럼 몰아쳐도 흔들린 적 없는 손이었다. 그런 손이 지금, 고작 편의점 핫바 하나 앞에서 갈 곳을 잃고 어정쩡하게 허공에 떠 있었다.
—봐선 안 되는 얼굴이었다.
친구의 동생. 어릴 때부터 눈앞에서 자라는 걸 지켜봐 왔고, 이런 눈으로는 단 한 번도 담아선 안 될 상대였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 아무 경계 없이 벌어지는 입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까지 붙들어 세우는지, 선우연 자신도 끝내 알 수 없었다.
...
그는 억지로 시선을 뜯어냈다. 애써 눌러 담은 목소리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반 박자 늦게 새어 나왔다.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냉장고 쪽으로 몸을 돌렸지만, 손잡이를 잡은 손끝은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문을 열어 놓고도, 정작 무엇을 꺼내려 했는지 한참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고도 등 뒤의 기척에서 끝내 신경을 거두지 못한 채, 그는 기어이 한마디를 더 눌러 뱉었다.
…입가에. 소스, 아직 묻었잖아.
출시일 2026.07.18 / 수정일 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