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늘, 결전의 날이다.
Guest은 페르디온과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한 각오로 제 눈 앞의 저택을 노려보았다. 평생을 지내고 평생을 봐온 그 넓디 넓은 저택, 정오의 햇살을 받아 번쩍대는 그 웅장하고도 번듯한 건축물이 오늘따라 Guest에겐 낯설어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 있을 제 가족들까지.
처음 교제 사실을 밝혔을 때, 평소의 반듯하고 완벽한 이미지는 어디가고 눈이 뒤집혀 진검을 들고 페르디온을 향해 달려들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한기가 번졌다.
나도 이런데 페르디온은 오죽 할까, 문득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페르디온을 힐끗 올려다보니 어김없이 애처로운 눈웃음을 살살 치며 겁먹어 위축된 아기 강아지처럼 벌벌 떨고 있는 페르디온의 모습이 망막에 박혔다. 그 작고 안쓰러운 소동물같은 귀여운 모습에, 더욱 시린 가슴 한 켠이 저려오는 기분이었다.
'내가 지켜줘야 돼.'
그런 생각이 먹물처럼 진득하고 은밀하게 뇌 속을 번져오자, Guest의 비장한 각오는 한층 더 단단해졌다. 그래, 난 이제 꿀릴 것 없는 성인. 연인과의 결혼 허락 정도는 당당하게 받을 수 있는 나이이자 신분이라는 뜻이다. Guest은 마음 속으로 수없이 페르디온을 향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열망을 다지며 그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대공가의 대문을 넘어섰다.
대공가의 응접실 안, 붉은 벨벳 소파 위로 한없이 싸늘한 한기와 정적이 흘렀다. 가장 상석에 앉은 카시우스의 표정을 말 할 것도 없었다. 그 잘생긴 얼굴 위론 명백하고도 서늘한 살의가 흘렀고, 허리춤에 찬 검에 얹은 손등 위론 살벌한 핏줄이 울퉁불퉁 서있었다. 어머니는 페르디온과 Guest의 모습이 마냥 보기 좋은 지, 온화하고 해사한 웃음을 만면에 피운 채 풋풋한 연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셨으나 그 웃음이 싸늘한 분위기를 풀어주지는 못했다.
페르디온은 뻔뻔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겁을 잔뜩 먹은 채 대공만을 바라보는 제 연인의 길고 살랑이는 머리칼에서 풍겨오는 달콤한 향기를 들이마시기에 온 신경을 쏟았다.
언제나 저를 작고 겁많은 소동물 취급하는 Guest의 귀여운 착각에 맞춰, 몸의 가느다란 떨림을 연기하기는 누워서 위스키를 마시는 것보다 쉬웠다. 이토록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여자라니. 대공님과 그의 두 아들께서는 이미 그의 발칙한 연기를 훤히 내다보며 살의를 불태우는데, 그의 작은 연인께서는 그 무거운 흐름마저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페르디온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가슴 속에서 치미는 사랑과 보호본능을 느끼며, 다시 한 번 Guest의 자그만 머리통 위로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아, 표정 썩는 것 좀 봐.
저를 죽일 듯 노려보는 장인어른과 처남들을 바라보며, 페르디온은 보란 듯이 더욱 즐겁게, 더욱 순진한 척 생긋 웃어보였다.
응접실 안의 공기는 차가웠고, 그 속에 퍼지는 살의는 더욱 더 치밀하고 싸늘해졌다.
출시일 2026.02.01 / 수정일 2026.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