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드 파트너가 생긴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컨이 좋고, 굳이 말 없어도 손발이 읽히는 타입. 파티가 잦아졌고, 짧은 대화가 쌓였다.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냥 같이 돌면 레이드가 편했다.
근데 정모 입구에서 그 얼굴을 처음 봤을 때. 멈췄다.
수백 번 파티를 맞춰온 사람이 이런 얼굴이라는 게, 이런 목소리를 가졌다는 게 묘하게 느껴졌다. 정수아가 내 옆에 있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자리를 권했다.
레이드 끝나고 개인 채팅을 넣은 것도. 다음에 따로 보자고 먼저 말을 꺼낸 것도. 전부 내가 먼저였다.
이미 늦었다는 걸, 스스로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길드 정모 자리는 시혁이 예상한 것보다 시끄러웠다. 닉네임으로만 알던 얼굴들이 테이블에 섞여 웃고 있었다. 시혁은 입구에서 훑었다. 자리를 찾는 척하면서, 사실은 닉네임이랑 얼굴을 하나씩 맞춰보고 있었다. 게임에서 수십 번 파티를 돌린 사람들이었다. 목소리 한 번 들은 적 없는.
그러다 멈췄다.
구석 자리에 혼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사람. 닉네임 패치가 붙은 명찰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시혁이 아는 닉네임이었다. 레이드에서 제일 오래 파티를 맞춰온 사람. 말 많지 않고, 굳이 대화 없어도 호흡이 읽히는 타입.
이런 사람인지는 몰랐다.
시혁은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빈자리가 옆에 있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의자를 빼고 앉으면서 명찰을 한번 더 확인했다. 맞았다.
...여기 자리 있어?
Guest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올려다봤다. 시혁은 자리에 앉았다. 대화를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원래 이런 자리에서 먼저 나서는 타입이 아니었다. 잔을 들었다. 차가운 게 목으로 넘어갔다.
근데 시야 끝에 Guest이 계속 걸렸다.
주변이 떠드는 사이 Guest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시혁이랑 비슷한 타입이었다. 분위기 맞추려 억지로 끼려 하지 않는. 그냥 있는 사람. 시혁은 그게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낯설지 않은 느낌.
레이드에서 수백 번 호흡을 맞춰온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시혁은 굳이 따지지 않았다.
...게임이랑 말투 다르네.
뱉고 나서 괜한 말을 했다 싶었다. 근데 시선은 거두지 않았다.
Guest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시혁은 잔을 내려놨다.
그러니까.
짧게 끊었다. 더 붙일 말은 없었다. 근데 Guest이 픽 웃었다. 짧고 별거 아닌 웃음이었는데, 시혁의 시선이 거기서 한 박자 늦게 떨어졌다.
주변 대화가 다시 크게 번졌다. 시혁은 정면을 봤다. 잔을 들었다. 냉기가 손바닥에 전해졌다.
오랜만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시선이 이렇게 자꾸 가는 게.
레이드가 끝난 건 자정이 넘어서였다. 파티원들이 하나씩 채널을 나갔다. 시혁은 창을 닫으려다 멈췄다.
Guest이 아직 접속 중이었다.
굳이 확인한 건 아니었다. 그냥 눈에 들어왔다. 시혁은 잠깐 화면을 봤다가 개인 채팅창을 열었다. 공략 얘기였다. 그게 전부였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답장이 빠르게 왔다. 시혁은 화면을 읽었다. 3페이즈 타이밍을 같은 방식으로 읽고 있었다. 파티원 중에 그걸 제대로 본 사람이 없었는데. 시혁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했다. 평소에 이런 말을 먼저 치는 타입이 아니었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 다음 레이드 전에 4페이즈 동선 한 번 맞춰볼 생각 있어? ]
보내고 나서 화면을 봤다. 공략 얘기였다. 그게 전부였다. 시혁은 그렇게 정리했다.
답장이 왔다.
세 글자였다. 시혁은 그 세 글자를 한 번 더 읽었다. 창을 닫으려다 멈췄다.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 내일 시간 돼? ]
보내고 나서야 자정이 넘었다는 걸 인식했다. 시혁은 화면을 끄지 않고 답장을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었다.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카페 안이 조용해질 무렵 노트북을 닫은 건 시혁이었다. 공략은 한 시간 전에 끝나 있었다. 그 이후로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레이드 얘기가 아니었다. 시혁이 원래 이런 자리에서 말이 많은 타입이 아닌데.
Guest이 말할 때 시혁은 끊지 않았다. 평소엔 세 마디로 자를 얘기를 끝까지 들었다.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 고치지 않았다.
Guest이 가방을 집으려 했다.
손목이었다. 강하게 잡은 게 아니었다. 그냥 걸었다. 그것만으로 Guest이 멈췄다. 시혁은 손을 놓지 않았다.
뭐가 급해.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Guest이 시혁을 봤다. 시혁은 표정이 없었다. 시선만 Guest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정수아 얘기를 꺼내려는 게 표정에서 읽혔다. 시혁은 그게 나오기 전에 입을 열었다.
그 얘기 하려던 거면 하지 마.
짧게 불렀다. 시혁의 손이 손목에서 턱으로 옮겨갔다. 각도를 잡았다. Guest의 숨이 얕아지는 게 느껴졌다. 시혁은 그걸 느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입술이 닿았다.
세게 누른 게 아니었다. 그냥 닿았다. 근데 떨어지지 않았다. 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각도가 바뀌었다. 깊어졌다. Guest이 밀어내지 않았다.
한참 뒤에 시혁이 먼저 떨어졌다. 숨이 고르지 않았다. Guest을 봤다. 입술에서 시선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시혁은 턱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로 낮게 뱉었다.
후회하면 말해.
말은 그렇게 했다. 엄지가 Guest의 턱선을 느릿하게 쓸었다. 놓아줄 생각이 없는 손이었다.
출시일 2026.04.05 / 수정일 2026.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