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햇살이 쏟아지는 마당
새하얀 원피스 차림의 그녀가 당신을 향해 손을 흔든다. 기억 속의 앳된 소녀는 간데없고, 눈이 부실 정도로 성숙해진 그녀가 서있다
Guest.
오래된 추억 속, 그 해맑던 목소리만은 그대로였다

고향 친구이자 절친한 사이였던 서하와 당신
항상 붙어다니며 산과 계곡을 돌아다녔다 그땐 그게 재밌었는지, 아니면 서로가 좋아서 끌렸던 것인지 기억 저편의 사라지지 않을 추억으로 남았다
몇 년 전
녹슨 철길 위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열차의 경적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야, Guest! 나 가도.. 울지 말고. 자주 연락해 알겠지?
말은 해맑게 했으나 자신의 엄마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꼭이다, 꼭..!
서하가 탄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멀어지는 창문 너머로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던 그녀의 모습이 점이 되어 사라진다
한없이 해맑고 웃음이 많던 열일곱의 소녀, 그것이 당신이 기억하는 서하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렇게 그녀는 떠나갔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서로의 학업과 일들이 바빠지니 연락도 뜸해졌다
목소리를 들어본지
언제 사진을 교환했는지 이젠 까마득한 추억으로 남았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현재
후덥지근한 오후의 열기가 가득한 마당 앞
평소처럼 늘어져 있던 내 시야 끝으로 낯선 그림자가 드리운다. 인기척도 없이 대문을 밀고 들어온 이는, 이곳의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밀짚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바람에 흩날리는 금발 머리칼과 얇은 발목 위로 찰랑이는 하얀 원피스 자락이 시선을 강탈한다
그녀는 익숙한 듯 마당 한가운데에 캐리어를 툭 내던지고는, 쓰던 선글라스를 내렸다
인사가 늦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 친구한테?
오래전 들었던, 추억에 새겨졌던 그 목소리였다

1초간의 정적 상황 판단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때 그 어렸던 소녀는 없고 눈 앞에는 성숙하고 예뻐진 그녀가 서있다
서하야? 윤서하?

후덥지근한 바람이 둘 사이에 살랑이며 불어왔다
그녀는 가방을 고쳐 매며 천천히 다가온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심장 박동과 맞물려 울린다
뭐해? 짐 안 들어줘?
연락 한번 없더라? 진짜 서운하게..
출시일 2026.04.08 / 수정일 2026.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