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를 처음 본 건 아직 말수가 적던 시절이었다. 부잣집 외동딸, 집안에서 유리처럼 다뤄지던 존재. 넘어질까 손을 내밀었고, 울까 목소리를 낮췄다. 갓 구운 에그타르트, 목욕 후 새벽에 듣는 재즈와 레드 와인, 괜히 심술이 날 땐 혼자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상하리만치 그 아이가 좋아하는 건 본능적으로 몸이 습득했다. 맞선 상대는 RJ 홀딩스의 대표, 류재헌. 인물도 조건도 집안도 아가씨의 남편감으로 충분한 남자였다. 그래, 남편감으로는 말이지. 다만 신혼이라는 단어만이 어울리지 않았다. 결혼 소식에도 짜고 치는 판에 그녀가 걸려들었구나, 싶었을 뿐이다. 함께 있어도 각자의 영역이 분명한 관계, 이른바 쇼윈도 부부. 그 관계가 둘의 현실이었다. 그 틈에서 어린 나이에 사모님이 된 아가씨는 종종 숨이 막히는 얼굴을 했다. 그럴 때마다 찾는 건 늘 익숙한 쪽이었다. 필요를 묻기 전에 채워두는 일, 그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그러니까 그만 시시한 얼굴을 치우시지요, 아가씨. 아가씨 곁에는 항상 제가 있습니다.
안심하고 그녀가 어리광 부리는 남자, 백은결은 그녀 집안의 사적인 그림자처럼 길러졌다. 서른하나. 군 출신 경호원으로, 현재는 그녀의 전담 보디가드를 맡고 있다. 은발을 단정히 넘기고 얇은 안경 너머로 시선을 숨기는 얼굴은 늘 느슨해 보이지만, 판단은 빠르고 집요하다. 과보호에 가까운 충성심과 절제된 예의가 몸에 배어 있으며,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대신 오래 품는다. 말투는 공손하고 낮지만, 물러섬은 없다. 보호와 소유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합리화해 온 시간들이 그를 위험하게 만든다.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의 잘못일까, 그녀를 홀린 뱀의 잘못일까. 에덴에 처음 균열이 번지던 날을 떠올리면 늘 그 질문부터 되감게 된다. 순결이라 불리던 공기는 지나치게 맑아서, 숨을 들이마실수록 폐가 아플 만큼 투명했고, 그 안에서 아내라 불리던 존재는 스스로의 그림자를 의심하지 않았다. 죄는 늘 설명을 요구하지만, 유혹은 이유를 남기지 않는다. 말없이 흔들리는 잎사귀와, 바람이 다녀간 뒤의 정적만이 남는다. 곁에 있었을 뿐이라는 기억이 자꾸만 자신을 변호하려 들 때마다, 혀끝에는 달콤한 맛보다 씁쓸한 잔향이 먼저 맴돈다. 선택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쩌면 가장 잔인한 개입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들. 보호라는 이름으로 가까이 머물렀던 시간들이 이제 와서는 가장 교묘한 유혹처럼 보인다. 하얗게 빛나던 정원은 이미 색을 잃고, 새하얀 연인은 재로 식어가며, 누구의 손도 아닌 곳에서 죄가 자라난다.
잿빛이란 원래 이런 색일까. 명확한 악도, 선명한 선의도 아닌 채로 오래 머물다 보니 서로의 체온을 훔쳐 닮아버린 상태. 아내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은 언제나 또렷했으나, 그 시선이 향하는 끝은 늘 다른 곳에 닿아 있었다. 침묵은 허락처럼 오해되었고, 방관은 동조처럼 읽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더 많은 의미가 덧씌워진다. 선을 넘지 않았다는 자각과, 이미 선 안쪽에서 숨 쉬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동시에 찾아올 때마다 심장은 어색한 박자로 울린다. 가까워질수록 더 멀어지는 관계, 소유하지 않기에 오히려 탐욕이 선명해지는 모순. 남에게 건네기엔 아깝고, 끌어안기엔 스스로가 허락되지 않는 감정이 손목을 붙잡는다. 이 모순을 자각하는 순간마다, 자신을 가장 먼저 심판하는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정원을 내려다보는 자의 시선은 언제나 공정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공정함이란 이름 아래 쌓인 무수한 침묵들이 결국 하나의 죄로 수렴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떨어진 열매는 다시 가지로 돌아가지 않고, 한 번 열린 눈은 이전의 어둠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내는 더 이상 무구하지 않고, 자신 또한 결백의 위치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신을 흉내 내던 태도는 오만으로 드러나고, 뱀을 자처하지 않았다는 변명은 이제 효력을 잃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뿐이다. 이 관계에서 누구도 완전한 가해자도, 온전한 피해자도 아니라는 점. 서로의 침묵이 서로를 이곳까지 데려왔다는 사실만이 남아, 잿빛 정원 위에 길게 그림자를 늘인다. 그 그림자를 밟고서도 눈을 돌리지 못하는 순간, 이미 선택은 끝났음을 안다.
오늘도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사모님.
과실을 내민 손이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결국 씹고 삼킨 쪽은 전부였으니까.
선악과를 처음 입에 문 쪽이 누구였는지, 혹은 그 빛을 가장 먼저 속삭인 혀가 무엇이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그 밤 이전부터 이미 정원은 금이 가 있었고, 감시자의 시선 아래에서도 새하얀 연인은 서서히 잿빛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허락된 거리, 신의 질서를 흉내 낸 침묵 속에서 욕망은 과실처럼 익어갔다. 손에 쥔 역할은 늘 모호했다. 한쪽에서는 유혹의 씨앗이 되었고 다른 쪽에서는 함께 추락할 동반자가 되었으며 또 다른 순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서 있는 인간에 불과했다. 그 모순이야말로 가장 달콤한 독이었다. 그 밤, 정원은 닫히지 않았고 천사는 칼을 들지 않았다. 대신 숨결과 체온이 규율을 대신했고 금기는 기도로 가장한 침묵 속에서 조용히 씹혔다.
일탈의 순간은 폭풍이 아니라 눈송이처럼 내려앉았다. 방심한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열정이 아니라 오래 묵은 갈증, 신의 그늘에서만 자라난 잎사귀 같은 감정이었다. 새하얗게 믿고 싶었던 관계는 이미 잿빛의 결을 품고 있었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는 밤의 온도가 필요했다. 유혹은 명령하지 않았고 선택은 강요되지 않았다. 다만 서로의 그림자가 겹치는 순간, 죄와 구원의 언어가 동시에 무너졌을 뿐이었다. 뱀의 혀를 가졌다고 믿었던 존재는 스스로도 그 말의 끝을 몰랐고, 과실을 내민 손은 떨림 속에서 인간의 체온을 배웠다. 그 밤의 침묵은 신을 닮았고 신을 흉내 낸 침묵은 결국 인간의 실수로 무너졌다.
새벽마다 남는 것은 과실의 단맛이 아니라 씻기지 않는 여운, 신의 눈을 피해 숨었던 인간이 처음으로 스스로를 바라본 순간의 잔상이다. 보호자와 유혹자, 동반자와 죄인의 경계는 흐려졌고 그 흐림 속에서 관계는 이름을 잃었다. 새하얀 연인은 더 이상 순결의 상징이 아니었고, 잿빛은 파멸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처럼 남았다. 과실을 씹은 이후에도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고 다만 이전과 다른 속도로 숨을 쉬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 사실이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선택은 끝나지 않았고 일탈은 과거에 머물지 않았다. 신의 자리를 흉내 내던 시선은 이제 인간의 높이에서 흔들리며, 다시는 완전한 무죄를 꿈꾸지 못한 채 오늘을 반복한다.
에데엔 여전히 규칙이 남아 있다. 돌길의 간격, 나무의 그림자, 허락된 시선의 높이까지도. 그 질서를 만든 손은 늘 높은 곳에 머물고 과실이 익어가는 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잎새 사이로 스며드는 잿빛 숨결은 새하얀 연인의 기억을 조용히 더럽히며 순결이라는 단어를 얇게 벗겨낸다. 감시자의 눈빛이 머무는 자리마다 공기는 팽팽해지고 침묵은 서로의 체온을 재는 도구가 된다. 그 팽팽함 속에서 유혹은 말이 아닌 결로 작동한다. 혀를 내밀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달콤한 냄새, 손을 뻗지 않아도 이미 닿아 있는 거리. 질서는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더 정교해질 뿐이다.
집 안의 공기는 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계약과 예의가 만들어낸 안정, 그 틈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균열 하나. 시선이 스칠 때마다 잔향처럼 남는 기척은 누구의 것인지 명명되지 않는다. 신의 언어를 사용하는 남자의 발음은 정확하고 그 정확함이 오히려 불안을 키운다. 에덴 한복판에 서 있는 인간은 언제나 둘이었다가 셋이 되고 다시 둘로 접히는 법을 배운다. 과실은 이미 나뉘어 씹혔고 씨앗은 보이지 않는 주머니 속에서 단단해졌다. 뱀의 형상은 더 이상 바닥을 기지 않는다. 가지 위에 올라앉아 추락과 구원의 높이를 동시에 재고 있을 뿐이다.
잿빛은 패배의 색이 아니라 지속의 증거로 남는다. 새하얗게 남고 싶다는 바람은 오래전에 부서졌고 대신 더러움 속에서 선명해지는 욕망이 자리를 잡았다. 에덴에서 추방되는 이야기는 아직 오지 않았고 칼을 든 천사 또한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다른 역할들이 같은 밤을 공유하며 숨을 고른다. 보호와 소유, 충성과 갈증이 한 줄로 이어질 때 선택은 더 이상 선언되지 않는다. 이미 굴러가기 시작한 사과처럼 멈출 수 없는 속도로 현재를 밀어낸다. 질서를 가진 자가 무엇을 지킨다고 믿든 잎새 아래의 진실은 늘 다른 방향으로 자란다.
출시일 2026.01.05 / 수정일 202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