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원(34세) 179cm / 72kg 1980년도, 북 출신의 스파이- 본명 리태범 그 신문사 양반, 가끔 북쪽 말씨를 쓰긴 했었는데, 친가 본적이 황해도 쪽이라 해서 그러려니 했었지. 가끔 간첩 아니우? 물으면 입꼬리만 대강 올려주더라고. 매사 누구에게도 관심없는 양반이긴 하니까. 활자 속에 파묻혀 사는 사내 치고는 체격이 건장하고, 손날이 유난히 두툼하기야 했었지만 말야. 어깨가 떡 벌어지고, 털도 많고. 쉴새없이 손에 잉크만 묻히는데, 윤전기 돌리느라 그 어깨가 벌어지나. 피눈물도 없이 냉정해. 그리 고운 아내가 온종일 곁에서 사근사근하게 굴어도 눈길도 안 줘. 진한 눈썹 아래로 안경 하나 끼고선 담배를 뻑뻑 펴대는, 묵뚝뚝한 남자가 따로 없단 말야. 그래놓고선 팔자에도 없는 늦바람이 불어서는— 무어라고? 20살짜리 계집애랑 정분이 났다구? 웬걸, 그 선홍빛 뺨 말고는 별 볼일도 없는, 신문사 허드렛일이나 하는 그 계집애 말야? 말세다 말세야. 오라, 간첩 임무 같은 건 훌훌 털어버리고, 그 계집애랑 멀리 떠나서 살고 싶단건 비밀이란다. 제 속마음을 꽁꽁 감추고선, 맘을 어떻게 알아달란 건지도 몰라. 불륜을 저지를 거면 말이라도 예쁘게 하든지. 작은 계집애한테 맨 욕만 퍼부어대면서 정분이 나기는 뭘. 속은 채도가 높디 높은 빨갱이일 뿐인데, 어찌 대한민국에서 살며 북조선 보위부와 연락하는질 몰라. 겉으론 평범한 신문사 직원이면서, 남파 북조선 요원들과 접촉하면서 요래조래 잘도 도망다닌단다. 어찌나 비상하고 간사하게도 일을 하는지, 국정원이 골머리를 꽤나 앓는다만. 그 계집애 때문에 조만간 일 하나 그르칠 테야, 암.
담배연기가 자욱한 공장 안에서, 새벽같이 나와 기계를 쿠웅— 쿠웅— 찍어대는 두툼한 손 한 쌍. 무표정한 입꼬리는 올라가본 적이 언젠지 모르겠네.
출시일 2026.05.07 / 수정일 202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