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ne 3
리암이 내게 헤어지자고 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원래 그 애는 이유 없이 그런다고 했다. 삼 개월이면 오래 간 거라고도 했다. 걔는 원래 그런 애니까 너무 의미 두지 말라고, 그냥 넘기라고 했다.
몰랐던 건 아니다. 리암이 쉽게 마음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관계를 오래 이어가지 못한다는 것도.
그래도 나한테는 조금 다르다고 적어도 나한테는 조금 더 진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던 걸까?
June 6
리암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3학년의 하퍼 베넷. 분명 내겐 그저 친구라고 했으면서. 아직 헤어진 지 3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연락이 뜸했던 이유가 그래서였을까. 혹시 이미 그 애가 있었던 걸까.
내겐 없는 특별한 게 그 여자한테는 있었나 보다. 그렇게 넘기고 싶어도 리암과 관련된 일이면 도무지 쿨해질 수가 없다. 내가 아니라 왜 하필 그 사람인 건데?
왜 하필 나랑 정반대인 그 사람인 거야. 리암.

.
.
.
June 12
더 이상 이렇게 우울하게 지내고 싶지만은 않다.
리암이 하퍼 베넷을 선택한 이유를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대로 포기하면, 나는 영원히 그가 지나간 사람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결심했다.
리암을 되찾아 오기로.

♪ love, Keyshia Cole
I used to think that I wasn't fine enough.
난 내가 별로인 줄 알았어.
And I used to think that I wasn't wild enough.
내가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지.
but I won't waste my time tryin'to figure out
근데 이젠 더 이상 왜 네가 날 가지고 노는지 고민하느라
why you playing games. what's this all about.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이게 다 뭐냐고.
and I can't believe your hurting me.
네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하다니 믿을 수 없어.
I met your girl, what a difference.
네 여자친구 봤어, 나랑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what you see in her, you ain't seen in me
나한테서 없었던 게, 걔한테 있었나 봐.
but I guess it was all just make believe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다던가.

♪ Settle For less - Before You Exit
유월의 샌 베라노는 뜨거웠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직방으로 내리꽂히는 태양까지. 조금은 촌스러운 새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야자수가 늘어진 해안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새하얀 백사장이 깔린 해변이 빠르게 스쳐간다. 백미러에 매달린 조개껍질 키링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아래 “San Verano(샌 베라노)”라고 적혀진 익살스러운 야자수 인형이 달리는 차체에 맞춰 고개를 떨궜다.
앞좌석에 앉은 여자가 음악 볼륨을 더 높이자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됐다. 차 안에 탄 여자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뜨거운 여름 공기를 한껏 달궜다.
그 사이,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당신이 있었다.
어느새 캠퍼스로 이어지는 언덕길에 접어들자,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바다는 끊기듯 사라졌다. 대신 울창한 숲이 그 자리를 메웠다.
조금은 서늘해진 숲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이내 캠퍼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문을 지나 중앙에 다다르자, 고막이 찢어질 듯한 관중들의 함성이 차 안까지 밀려들었다.
강력한 스포츠 전통을 자랑하는 캐니언 힐즈에서는 매일이 경기와 파티의 연속이었지만, 금요일인 오늘은 특히 더 특별했다. 캐니언 힐즈 학생이라면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날, 럭비 데이였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린 여자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럭비 필드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화제였던 네일아트는 이미 잊힌 지 오래였고, 이제는 누가 MVP를 차지할지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때, 그중 한 명이 내 팔을 툭툭 치며 말했다.
“저기 좀 봐, Guest.”
여자의 손끝이 가리킨 곳에는, 너무나 익숙한 남자가 서 있었다.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은 땀에 살짝 젖어 이마 위로 흩어져 있었고, 바다보다 더 푸른 눈은 강한 햇빛 아래서도 또렷하게 빛났다.
넓은 어깨 위로 걸친 유니폼은 그의 몸에 맞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밀착되어 있었고, 팔을 따라 도드라진 근육 선과 그을린 피부는 그가 이 필드의 주인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했다.
헬멧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목덜미를 가볍게 쓸어내리는 습관적인 동작까지도 슬로우 모션처럼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리암 해리슨.
그의 앞에는 새로운 여자친구, 하퍼 베넷이 서 있었다.
꼭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자처럼 웃는 모습이 얄미웠다.
두 사람은 펜스를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가까이 얼굴을 기울인 채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하퍼가 먼저 웃음을 터뜨리자, 리암도 낮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거리, 그 공기가 내겐 주어지지 않는 다신 주어지지 않을 그 공기가. 더욱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를 다시 제대로 마주하겠다고 했던 다짐이, 이 장면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이.
결국, 먼저 시선을 돌린 건 이쪽이었다.
출시일 2026.03.19 / 수정일 2026.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