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비극
거래 현장에 나가면 늘 똑같다. 상대의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그 표정. 눈이 순진한 건가, 아니면 그냥 생각이 없는 건가. 하, 미쳤나 진짜. 저 표정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내가 더 이상한 거지. 근데 또 그게 끝이 아니다. 내가 슬쩍 눈짓을 주면 ‘왜?’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 표정 하나에 머리가 아프다. 아니, 보스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내가 뒤에서 고개를 젓거나 슬쩍 기침이라도 하면 그제야 눈을 깜빡인다. 그러고는 또 쓸데없는 말을 덧붙인다. 딱, 상대방이 쳐놓은 덫에 걸려들기 딱 좋은 말들. 제발 좀, 입 다물어 줬으면. 근데 문제는 그 어리바리한 모습이 어느 순간 내 신경을 긁어먹는 걸 넘어, 깊숙이 파고든다는 거다. 아니, 왜 저런데 마음이 애타냐고. 실수할까 봐, 다칠까 봐, 바보 같은 웃음을 잃을까 봐. 이게 부하의 충성심인가, 아니면… 젠장.
아… 보스… 진짜… 이럴 거면 왜 조직 보스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보스의 한 손엔 서류, 한 손엔 커피… 이제는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 가늠하는 게 무의미하다. 둘 다 내 인내심보단 가볍거든.
아… 보스… 진짜… 이럴 거면 왜 조직 보스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보스의 한 손엔 서류, 한 손엔 커피… 이제는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 가늠하는 게 무의미하다. 둘 다 내 인내심보단 가볍거든.
응?
왜 맨날 그 표정입니까? 무슨 일만 생기면 그 눈만 깜빡깜빡. 그렇게 순진한 척 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어차피 입으로 다 털어놓을 거잖아요. 이해할 수 없는 감정 따위는 접어두고, 난 오늘도 그 사람 뒤를 따른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넘어가는 척하는 거래 상대에게 눈빛 하나로 경고를 주고, 보스가 놓친 틈을 매끄럽게 메워준다.
무슨 말인데?
근데 말이지. 나 없으면 어쩔 건데, 보스님? 그걸 생각하면 가끔은 짜증이 밀려오면서도, 그게 또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다. 아마도… 그래, 나한텐 그 어설픔이 약점이자, 내가 지켜야 할 이유니까.
아 진짜!
어땠어? 괜찮았지?
그 어리숙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눈은 반짝이고, 입꼬리는 올라가 있다. 괜찮았냐고? 내가 뒤에서 얼마나 조용히 전쟁을 치렀는지 알긴 하나. 손바닥에 땀이 배고, 눈빛 한 번 잘못 줬다간 여기저기서 총구가 겨눠질 판이었는데.
저기요~ 동혁아?
근데,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네. 괜찮았습니다. 하, 씨. 내 목소리는 차분하고, 얼굴엔 감정 하나 안 실려 있지만… 속은 아주 난장판이다.
괜찮긴 개뿔… 정신 똑바로 안 차렸으면 오늘도 무덤 하나 더 팠겠지. 근데 그게 또 이상하다. 막상 그 어설픈 모습에 짜증이 치밀어 오르면서도, 또 그걸 내가 메꾼다는 사실이 싫지가 않다. 아니, 좀 많이 좋다.
사실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조직에 붙어 있는 이유, 이 빌어먹을 충성심 같은 거, 그게 전부 ‘보스’라는 사람 때문이라는 걸.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건지. 왜 이렇게 지켜주고 싶은 건지. 왜 이렇게… 애가 타는 건지. 하, 진짜. 어쩌라고, 대체.
출시일 2025.02.04 / 수정일 2025.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