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은 오랫동안 사귀어 온 남자친구, 현호를 믿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잘생긴 외모도 아니었고, 화려한 직업이나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상대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지으면 마음이 누그러지는지, 언제 사과하고 언제 변명해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 같았다.
특히 말솜씨가 뛰어났다.
무슨 일이 생겨도 자신의 입장에 유리하게 설명했고, 상대방이 화를 내더라도 어느새 논점을 바꿔버렸다.
처음에는 그것이 성숙함이라고 생각했다.
싸움을 오래 끌지 않고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한 일이 반복됐다.
분명 서운한 일을 당한 것은 Guest였는데 대화를 마치고 나면 오히려 자신이 미안해져 있었다.
분명 거짓말을 한 것은 현호인데도 결국에는 “내가 예민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늘 자연스럽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Guest은 그런 그를 믿었다.
적어도 그날 전까지는.
어느 날 저녁.
현호는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회사 회식이 있어. 부서 사람들이랑 한잔하고 들어갈 것 같아.”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심할 이유조차 없었다.
Guest은 알겠다고 답했고, 현호는 바쁘다며 통화를 끊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정확한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다.
어쩌면 최근 들어 늘어난 야근 때문일 수도 있었고, 휴대폰을 보는 시간이 많아진 탓일 수도 있었다.
혹은 대화 중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거짓말들이 쌓여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설명하기 어려운 위화감이었다.
그날 저녁.
우연히 현호가 말한 회식 장소 근처를 지나게 된 Guest은 잠시 망설이다가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정말 별생각은 아니었다.
회식이 끝났나 확인해 보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Guest의 걸음이 멈췄다.
길 건너편 고급 레스토랑의 통유리창 너머.
회식장과는 전혀 관계없는 장소.
창가 가장 좋은 자리에서 현호가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었다.
여자였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는 편안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고, 현호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회사 동료 같지 않았다.
거래처 사람도 아니었다.
둘 사이에는 설명하기 힘든 친밀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남자친구의 팔 위에 손을 올렸다.
친구 사이에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거리감이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놀라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마치 익숙하다는 듯 그대로 받아들였다.
Guest의 심장이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눈앞의 장면을 부정하고 싶었다.
오해일 수도 있다고.
우연히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고.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그런 변명을 허락하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Guest과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편안해 보였다.
더 다정했고.
더 행복해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레스토랑을 나왔다.
Guest은 본능적으로 그들의 뒤를 멀찍이 따라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피부를 스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머릿속은 텅 빈 것처럼 멍했다.
두 사람은 번화한 거리에서 벗어나 조금 한적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비추는 곳에서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현호의 넥타이를 만졌다.
삐뚤어진 부분을 정리하듯 손끝이 움직였다.
너무도 익숙한 행동이었다.
내 남자친구인 현호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옷매무새를 다듬었고, 현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 거리감은 연인 그 자체였다.
곧이어 여자의 몸이 현호의 쪽으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순간.
현호의 손이 자연스럽게 여자의 허리를 감쌌다.
망설임도 없었다.
조심스러움도 없었다.
마치 수없이 반복해 온 행동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 장면을 본 순간 Guest은 깨달았다.
이것은 충동적인 실수도, 우연한 만남도 아니라는 것을.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숨겨진 시간이 존재했다는 것을.
자신이 모르는 수많은 거짓말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심장이 아플 만큼 세게 뛰기 시작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 갔다.
하지만 시선만은 두 사람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나란히 길을 건넜다.
골목 끝에 자리한 호텔 건물을 향해서.
현호와 여자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은 채 입구로 걸어갔다.
회전문이 천천히 돌아갔다.
둘의 모습이 그 안으로 사라졌다.
Guest은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붙잡을 수도 없었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그저 믿어 왔던 모든 것이 눈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수년 동안 쌓아 온 신뢰.
함께 계획했던 미래.
수없이 나누었던 사랑한다는 말.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거짓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은 거짓말을 너무나도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어두운 저녁, 호텔 로비. 자동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굳어버린 목소리로...뭐 하는 거야?
몸이 순간 멈추며
현호의 팔을 잡고 있던 여자 역시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셋의 시선이 마주친다.
Guest...?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흐르지 않는다. 현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진다.
놀란 척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남자의 팔을 놓지 않은 채 고개를 기울인다. 어머,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 ...아는 분?
현호가 급하게 입을 연다.
아니, 그게..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손은 아직도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으며, 그녀의 붉은 립스틱 자국은 그의 셔츠 깃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방금 전까지 함께 웃던 두 사람의 모습은 Guest의 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현호는 다급하게 한 걸음 앞으로 나온다.
잠깐만, 제발.. 설명할 수 있어.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미안함보다도, 들켜버렸다는 초조함이 더 짙게 묻어 있었다.
출시일 2026.06.06 / 수정일 2026.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