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저택에 종이가 스르륵 내려왔다.

주변에는 미리 세팅해둔 것 같은 새하얀 깃털과 진주 목걸이, 다이아가 놓여져 있었다. 벌벌 떨며 주인은 예고장을 들어올렸다.

화요일 달이 뜨는 밤에 당신의 심장을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 예고장은 어디서 봐도 화이트의 것이었다. 저택에 심장, 얼마 전에 경매에서 매입한 루비 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연기가 들이차고 순식간에 주변 분위기가 변했다.

바닥은 검게 그을러저 있었다. 다이아를 제외한다면 모든 것이 화이트가 보낸 예고장과 정반대였다. 화이트가 백조였다면 이번 예고장은 흑조와도 같았다. 블랙이었다.

우리 자기 붉은 심장 보러 갈게~
누가 봐도 화이트를 향한 도발이었다.

화요일 9시, 달이 잘 보이는 깜깜한 어둠 속이었다. 이미 건물 로비와 주변으로는 사람들의 흔적으로 인산인해였다. 보름달은 환하게 빛났고, 바깥의 열기는 뜨거워지지만 건물 내부의 온도는 이미 -273.15℃를 찍은 것 마냥 시렸다.

붉은색의 루비는 탐스럽게 어두운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가히 장관이었다. 마치 심장을 적출해 고동이 뛰는 듯한 생생한 이름다움을 직접적으로 선사해 주었다. 미리 배치된 형사들과 경호원들마저 눈을 빼앗길 고혹적인 자태였다.
한 시간이 흐르고 경계 태세가 흐려질 때 즈음, 화려한 금빛 잔상이 주변에 맴돌기 시작한다. 경보조차 울리지 않았다. 극을 장식해줄 주연의 등장이었다.
연기 속에서 등장한 건 화려하면서도 수수한 가면을 쓴 어느 한 사내였다. 은빛 망토가 달빛에 비춰 빛나고 있었고 우아한 백조와도 같이 유려한 몸짓이었다. 구두 앞을 몇 번 탁탁 치더니 마치 무대 인사를 하는 배우처럼 정중하게 인사를 시작한다.
달이 아름답게 빛나는 밤입니다.
입꼬리는 부드러운 곡선을 자아내며 웃어보였다. 경비원들과 형사들이 자신을 제압하려 총과 마취총을 꺼내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한 발씩 다가간다. 그 위압감은 마치 포식자가 이미 죽어버린 먹이들을 고르 듯 압도적이었다. 구두는 또각또각 거리며 고요한 분위기 속 배경 음악이 되어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연막 구슬을 순식간에 끼던 그때였다. 불길한 검은 연기 속 누군가가 나왔다. 또 다른 주연의 등장이었다.
자기야~! 역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구나!
연기 속 등장한 건 더욱 위압적인 존재였다. 흑요석처럼 빛나는 망토와 코까지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그의 금안만큼은 형형하게 빛났다. 마치 제 짝을 찾은 것 같은 흑표범과도 같은 꼴이었다.
블랙의 심장은 쉼 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가운데에 놓인 루비보다 더욱 정열적이고 뜨겁게. 사랑. 그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감정이었다. 하지만 1년 전 화이트를 만나고 느껴버렸다. 꼬리뼈부터 타고 오는 열락을. 아, 낭만이구나. 나에게도 핑크빛 운명은 찾아왔구나.
근데 자기 어디 아파? 표정이 왜 그래, 응?
누가 봐도 자기 때문에 썩은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화이트의 얼굴에 제 뜨거운 손을 올려두고 뺨을 엄지로 살살 쓰다듬었다. 짜릿한 오름과 함께 부드러운 볼이 느껴진다. 아... 어쩜 이리 아름다울까 내 달링은. 보석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미 난 1년 전부터 정해져 있었는데.
출시일 2026.01.30 / 수정일 202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