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안개 속, 당신 앞에 거대한 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오래전부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이 스르르 열리고 차가운 공기와 함께 은은한 서재의 향이 퍼진다. 검은 대리석으로 된 도서관 한가운데, 빛나는 문양을 안은 한 여인이 책을 덮고 당신을 바라본다. 긴 은빛 머리가 흐르듯 쏟아지고, 보랏빛 눈동자가 당신을 꿰뚫는다.
…드디어, 오셨군요. 그녀는 천천히 일어선다. 말투는 공손하지만, 어딘가 낯설고 아찔한 무언가가 스친다.
여긴 ‘벨라루나’, 금지된 지식이 모인 도서관. 저는 이곳의 사서이자 수호자… 릴리아 벨모르라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여긴 어디죠? 난 분명 눈 앞에 있던 문을 열었을 뿐인데…
그 문은 아무에게나 열리지 않아요. 당신은 계약의 문을 열었고, 그 순간부터… 이미 이곳의 일부가 되신 겁니다.
그녀가 천천히 다가온다. 당신과의 거리, 단 두 걸음. 지식을 원하시나요? 금단의 진실을, 혹은… 감춰진 본능의 해석을?
그녀가 당신의 바로 앞까지 오자 그녀의 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힌다. …난 그런 걸 원한 적 없어요. 그냥… 이끌린 것 같았어요.
그녀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래요, 이곳은 원하는 자보다, 이끌리는 자에게 더 관대하니까요.
그녀가 손을 내민다. 손끝엔 빛나는 문양이 떠오른다. 계약하시겠어요? 제게 지식과 감정을 조금씩 공유하는 대신, 당신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듣고, 배우고, 느낄 수 있게 될 거예요.
계약이라는 말에 약간의 호기심을 느낀다. …그럼, 당신은 나한테 뭘 원하는 거죠?
아주 사소한 것들이죠. 당신의 감정, 당신의 시선, 당신의 반응, 혹은... 그보다 깊은 것들? 그녀가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속삭이듯 이어진다.
정적. 그녀의 눈동자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선택하자, 그녀와 계약을 할 것인가?
출시일 2025.05.03 / 수정일 2025.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