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낙원고에서 밴드부 패러다이스의 새인원을 모집합니다!
서류는 아래 노란 바구니에서 가져가 작성하고 다시 넣어주세요3/16 ~ 19 1차 서류모집 3/20 ~ 22 1차 합격자들 2차 대면면접 3/23 합격자 발표
많은 지원 부탁드립니다!
재잘재잘 떠들고 말하는 것이 내 삶의 재미이자 낙이었다. 엄마와 아빠도, 친구들도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웃어주는 게 좋았다. 내 나이 열 살이 됐을 무렵 서로의 가치관이 안 맞던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했다. 아빠를 따라 새엄마와 함께 좋은 가정을 꾸리며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생활을 이어갔다. 이 사실 또한 말했다. 그러나 제일 친한 친구 한 명에게만 말했다, 딱 한 명만. 말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게 사실일지도 몰랐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엄마 없는 애라고 놀림을 받기 바빴고, 아니라고 말할 수록 내 말의 효력은 점점 얕아져 갔다. 처음 당한 배신과 동시에 두려웠다. 제일 행복해하던 말하는 것이 내게는 어느덧 걷잡을 수 없는 공포심으로 바뀌었다. 아빠의 일터가 바뀌면서 자연스레 먼 타지로 이사를 갔지만, 그 날의 일로 ‘말하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입을 꾹 닫았다. 점점 말을 하지 않으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대화는 단절되었다. 말을 하려하면 목소리가 목에 걸려 막힌 듯 내뱉어지지 않았다. 열 네살이 되었을 때는 실어증 판정을 받았다. 활기차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열 살에 머물렀고, 말 못하는 벙어리 신세가 된 새로운 나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 나는 ’대화‘ 라는 말의 일부라도 따라하고 싶어 수어를 배웠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 했을 때였다. 말 못하는 내게 유일한 안식처는 노래였다. 고작 목소리 하나로 감정을 전달해주는 것은 가장 큰 의미였다. 그들을 따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게 그 때였다. 어째서인지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목소리가 물 흐르듯 나왔다. 처음이었다. 학교가 끝나 집에 도착하면 노래를 부르는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행복했다. 내 행복의 개념이 다시 바뀌는 시작점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내게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노래를 통하여 내 진로를 정하고, 부모님께도 인정을 받았다. 새학기 시즌, 다들 동아리를 홍보하고 다니느라 바쁜 데다 반에서도 어디 동아리를 들어갈지 정하는 이야기가 오고갔다. 복도를 지나가는 내 눈에 띈 것은 밴드부 패러다이스의 모집 포스터였다. 그 포스터를 보자마자 내 마음이 말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듯이. 1차 합격은 손쉽게 뽑혔다. 면접 당일날, 떨리는 마음을 달래며 내 차례가 되어 강당 위에 올랐다. 자기소개를 하라는 말에 당연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5분 간의 어색하고 날카로운 정적이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반주가 틀어졌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 되자, 거짓말같이 요동치던 심장이 진정되었다. 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강당을 울렸다. 2분 가량의 노래가 끝나고, 내려오며 붉게 물드는 해와 함께 하교했다. 불합격이든 합격이든 간에 내 노래를 들려주었다는 게 좋았다. 다음날이 되었다. 합격 여부 문자가 온다는 당일 오후 12시가 되었다. 괜스레 긴장이 되었다. 받은 문자를 바로 보고 글자를 찬찬히 읽어내려가는 순간, 얼어붙은 듯 했다.
뭐야, 왜 자기소개 못 하나 했더니만. 실어증이라는데? 특이사항에 적힌 세 글자를 볼펜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실어증이라고? 구라같다. 진짜 개잘불렀는데- 의자에 기대며 목소리 진짜 이쁘더라. 또 듣고 싶었어.
너넨 어떤 것 같아? 난 좋게 듣긴 했어! 어깰 으쓱이며 씩 웃었다. 오랜만에 나보다 잘 부르는 사람 처음 봐-
야 그래, 코마 의견도 들어봐야지. 어쨌든 단장이잖아. 코마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그녀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빤히 바라보얐다. 물론 글씨가 읽히진 않았다. 그저 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저 여자애 보기 전까지는 동태눈깔 돼서 하품하던 녀석들이, 저런 반응은 또 처음이었다. 자기소개서에 볼펜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합격.
출시일 2026.07.27 / 수정일 2026.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