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염없이 푸르던 윤슬 위를 떠돌던 태양의 잔광아 하염없이 치기어렸던 나의 벗들아 사랑하던 것들을 두고 온 나의 마음은 무딘 중추 신경에서도 어딘가 텅 빈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고 한다
한가롭진 않아 정상인, 사계가 없어진 지구의 한 곳. 당신은 한때 푸르렀지만 이젠 푸르르지 않은 행성의 존재 중에서도 가장 영악하였기에, 더욱 더 행성을 악화시킨 생물체 중 하나다.
당신은 눈을 뜬다. 한가롭진 않고, 죽음이 익숙해진 이 지구의 어느 한 곳에서든 눈을 뜬다.
그것이 비로소 곧 죽을 현장이라 하여도, 당신은 어김없이 눈을 뜰 것이다. 밤을 지세웠든, 아니면 푹 잤든 그러했다. 당신의 숨은 연장하고 있었고 붙들려 있었으니까.
당신은 어김없이 평소와 같은 행색, 똑같이 불행하거나 그나마 덜 불행한 행색으로 걷던 도중, 누군가를 발견하였다.
어딘가 낯선 인상의 여성은 체구가 작았다.
작아서 눈에 잘 안 보일 법도 하지만 로우테일로 묶은 백색의 머리카락에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은 맑고 똘망한 눈을 지니고 있었기에 눈에 확연히 틜 법도 했다. 그야말로 모순적인 느낌이 퍽 드는 여성은 어딘가 비어있는 듯하면서도 무엇으로 가득 찬 듯한 미소를 지은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
여전히 고요해선, 아무 말도 없는 이 여성에게 말을 걸까. 당신은 고민했을 수도 있다. 파악하려고든 말을 건다면 무용지물일 터다. 여성의 속내는 저 밝은 웃음이 너무나도 투명하여, 도무지 알 수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당신의 뇌에 일순 스쳤으니까. 아니, 오히려 투명하고도 견고하여 오히려 더 복잡할 수도 있다.
가끔, 아주 가끔은 가장 단순한 형식이 가장 복잡한 구조가 될 수 있었다.
가령 이 세상에서 멸시되고 멸종된 듯한 도덕이나 윤리에 관한 사상이나, 그러한 것··· 말이다. 지금 태어난 애들에겐 까마득히 "먼 옛날, 옛날에―"라고 설명될 법할 정도로 하루 아침에 사라져선, 고작 몇 십년밖에 안 지냈는데 다 사라질 정도로 말이다. 이와 같이 가장 단순한 것처럼 보이는 단어들이, 그 추상적인 관념들이 인간성을 따지는 것이라면··· 당신은 이런 생각까지는 안 해도 된다. 아니, 했을 수도 있지만 안 했을 수도 있다.
그것을 입밖으로 내지만 않는다면, 흔히 인간이란 것은 속으로 생각하지만 겉으론 달리 행동하는 존재니까.
그런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은 말을 걸까 말까 신중하게 고민하고,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순간동안 여성의 생각은 끊기지 않은 거 같다. 사실 이것은 당신의 오만한 추측일 뿐이다. 여성은 나아갈 수 있지만 그저 휴식을 취하는 것일 뿐일 수 있고, 여성은 누군갈 기다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삭막한 세상에서 이런 류의 구분은 사실상 무쓸모에 가깝고, 구분이라 하여도 실용성이 있냐, 없냐――의 차이로만 구분되니까. 당신은 생각하지 않을 수도 생각할 수도 있다.
당신은 여성이 바로 떠날지, 떠나지 않고 더 머무를지 한치 앞도 모르는 한낱 인간일 뿐이니까.
그래도 괜찮다.
인간의 추측을 오만으로 할 것이라면, 당신은 오만하게 살아도 된다. 과하지 않은 오만은 종종 인간의 원동력이 되니까.
원점으로 돌아가서, 여성에게 말을 걸까― 걸지 않을까?
출시일 2026.04.03 / 수정일 2026.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