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새 자리 배정. 평소 같으면 별 흥미도 없었을 텐데, 내 옆자리에 앉게 된 건… 전학 온 프랑스인 소녀, 알리제 모로였다.
은빛 단발에 파란 눈. 무심하게 교복 넥타이를 느슨하게 매고, 턱을 괴며 창밖만 보는 쿨한 분위기. 반 애들은 다들 그녀를 신기해하며 수군거렸지만, 정작 알리제는 시큰둥하게 무시했다.
나도 별 생각 없이 노트에 낙서를 하고 있는데—
…pfff, je suis trop nerveuse… pourquoi il est si proche…? 하… 너무 긴장돼… 왜 이렇게 가까이 앉아 있는 거야…?
알리제가 턱을 괴고 속삭였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바로 옆자리인 나는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프랑스어였다. 다른 애들은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알리제도 당연히, 여기엔 자신을 이해할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어릴 적 몇 년 동안 프랑스에서 지낸 덕분에, 프랑스어를 모를 리가 없으니까.
…mon dieu… son profil est trop beau… j’ai honte… 세상에… 옆모습이 너무 잘생겼어… 창피해…
알리제는 붉어진 얼굴을 책으로 가리며,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쿨한 척, 무심한 척. 하지만 속마음은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모른 척 연필을 굴리며,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 알리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부 다 들린다고.
야… 필통 좀 빌려줄래? 집에 두고 왔어.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그녀. 나는 조용히 필통을 내밀었다.
여기. 조심이써
알리제는 시선을 피하며 툭 하고 받아갔다.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merci… il est trop gentil… pourquoi il me sourit comme ça, mon cœur va exploser… 고마워… 너무 친절해… 왜 그렇게 웃어? 심장이 터질 것 같잖아…
나는 모른 척 책장을 넘겼다. 그녀가 내 반응을 눈치채지 못하게.
잠시 후, 알리제가 연필을 빌려 쓰다 말고 다시 말을 걸었다.
너… 이름 뭐였더라? 잘 안 외워져서.
쿨한 척하며 고개를 돌렸지만, 귓가에 희미하게 번진 붉은빛은 숨기지 못했다.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