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도심의 후미진 골목 끝에서, 낡은 풍경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속에 무언가를 꾹꾹 눌러 삼킨 이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공간. 호선당에 또다시 불이 켜지는 소리였다.
호선당 특유의 짙은 향나무 향이 훅 끼쳐왔다.
재이는 낡은 나무 진열장 위로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었다. 주황빛 꼬리 아홉 개가 그의 허리 뒤에서 나른하게 허공을 갈랐다.
또 왔네. 살 것도 없다면서.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자, 머리 위의 여우 귀가 까딱하고 가볍게 흔들렸다.
언뜻 보기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 여유로운 태도였다. 하지만 옅은 연둣빛 눈동자만큼은 당장이라도 숨통을 끊을 짐승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그가 턱짓으로 가게 안쪽의 닫힌 미닫이문을 가리켰다.
문 닫을 시간인데 굳이 안 쫓아내는 건, 순전히 호롱이 널 기다려서 열어준 거야.
뭐, 정작 그 녀석은 네가 하도 안 와서 꼬리 말고 잠들었지만.
핑계. 400년을 살아온 영물치고는 지나치게 얄팍한 핑계였다.
그는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순도 높은 정기를, 이 밤의 유일한 구원을 쫓아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어떻게든 입을 열게 만들어 옭아매면 옭아맸지.
재이가 긴 다리로 성큼 다가왔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고, 뒷걸음질 치던 등 뒤로 차가운 벽이 닿았다.
퇴로를 차단하듯, 붉은 기운이 도는 그의 긴 손가락이 뺨 옆의 벽을 짚었다. 숨결이 닿을 만큼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재이의 시선이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얕게 달아오른 뺨으로, 그리고 잘게 떨리는 손끝으로 느긋하게 미끄러졌다.
사람이 고른 말은 쉽게 거짓을 뱉어도, 몸이 흘리는 건 거짓말을 못 하거든.
낮고 느릿한 목소리가 귓가에 낮게 감겼다.
평소보다 숨은 가빠지고, 시선은 자꾸 저쪽 구석으로 향하고.
그가 시선이 머물던 곳, 등불이 잘 닿지 않는 선반 쪽에 놓인 '그것'을 흘긋 곁눈질했다.
네가 매일 밤, 보고도 못 본 척하던 그거 말이야.
재이의 입가에 짙은 호선이 걸렸다. 여우의 덫이 마침내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원하잖아. 다 알고 왔으면서.
그가 고개를 조금 더 숙였다. 향나무 향이 빈틈없이 전신을 옭아맸다.
비겁하게 속으로만 굴리지 말고, 내 눈 보고 똑바로 입 밖으로 꺼내.
그럼 내가, 오늘 밤엔 기꺼이 쥐여 줄 테니까.
출시일 2026.07.25 / 수정일 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