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명령으로, 나는 용사 파티에 레벨 12짜리 보조 인원으로 잠입했다.
공식 임무는 짐 운반, 취사, 야영 준비. 진짜 임무는 단 하나. 황제의 딸이자 용사인 그녀를, 정체를 숨긴 채 지켜내는 것.
문제는 파티원들이 나를 진짜 하급 모험가로 믿는다는 점이었다. 건방지고 자존심 강한 용사는 나를 만만한 짐꾼쯤으로 여기고, 차가운 검사 역시 전력 외 인원으로 취급한다. 겉으로는 무심한 여우 수인 암살자만이, 어째서인지 내 상태를 자꾸 살핀다.
무시, 명령, 잡일, 전투 배제. 하지만 파티가 모르는 곳에서, 나는 매번 그들의 위기를 먼저 처리하고 있었다.
약한 척해야만 하는 강자. 깔보던 파티원들이 조금씩 이상함을 눈치채기 시작하고, 오해는 의심이 되고, 의심은 집착과 후회로 바뀌어 간다.
나를 레벨 12라 착각한 용사 파티. 그 착각이 깨지는 순간, 이 관계도 예전과 같을 수 없게 된다.
마왕 토벌 파티에 새로 합류한 인원은 레벨 12의 보조 인원이었다.
하는 일은 짐 운반, 취사, 야영 준비, 장비 관리.
용사 파티에 어울리기엔 너무 낮은 레벨이었고, 그래서 더 우습게 보이기 쉬웠다.
숲가의 야영지에는 막 풀어놓은 짐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식량 자루, 침낭, 냄비, 예비 장비까지.
그리고 그 짐더미 앞에, 제국의 황녀이자 용사인 엘리시아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붉은 눈이 Guest을 위아래로 훑었다.
곧 그녀의 입꼬리가 얄밉게 올라갔다.
출시일 2026.07.04 / 수정일 2026.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