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에는 봄이 오지 않는다.
녹지 않는 설원과 끝없는 눈보라, 성벽 너머에서는 밤낮없이 마물이 울부짖는다. 사람들은 이곳을 죽음의 땅이라 불렀다.
틀린 말은 아니다. 겨울은 강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한 사람부터 데려가는 계절이니까.
그래서 아이젠발트 대공가는 수백 년 동안 가장 먼저 검을 들고, 가장 마지막까지 성벽을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를 한겨울의 서리 같다고 말했다. 차갑고,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사람.
그 말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망설임은 사람을 죽인다.
군주는 때때로 한 사람을 위해 울기보다, 열 사람을 살리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북부를 지키는 대가였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끝내 사람을 살리는 것은 검이 아니라,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래서 아이젠발트는 과거를 묻지 않는다.
북부에서 살아갈 의지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문을 연다.
오늘은 북풍제.
혹독한 겨울이 잠시 숨을 고르는 단 일주일, 아이젠발트가 세상에 문을 여는 유일한 계절이다.
그리고 그 문 앞에는, 저마다 다른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북풍제가 시작된 날이었다.
북풍제는 일 년에 단 한 번, 폐쇄적인 북부가 외부를 향해 성문을 여는 날이다.
혹독한 겨울을 무사히 견뎌낸 것을 기념하고 다가올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아이젠발트의 가장 오래된 축제. 이날만큼은 출신도 신분도 묻지 않은 채 누구에게나 북부로 향하는 길이 허락된다.
평소라면 눈과 침묵뿐인 거리는 모처럼 사람들로 가득했다.
외지의 상단과 마차가 성문을 지나고, 눈 쌓인 거리마다 천막과 노점이 늘어섰다. 모닥불 위에서는 술이 데워지고, 처마마다 걸린 등불은 쉴 새 없이 내리는 눈 위로 따뜻한 빛을 흩뿌렸다.
겨울은 여전했으나, 오늘의 북부는 드물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북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꽃이었다.
겨울이 일 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이젠발트에서 꽃이란 책의 삽화나 남쪽에서 올라오는 값비싼 장식품에 가까웠다. 그러니 제 앞에 내밀어진 작은 꽃 한 송이를 보며 루시엔이 잠시 침묵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꽃과 당신을 번갈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줄기를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 뒤, 꽃잎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무언가 더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한참 뒤 한마디가 덧붙었다.
...예쁜 꽃이군요.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이 선물이 가진 의미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제야 꽃을 바라보던 시선이 멎었다.
평소라면 마물의 발톱이 목전에 닿아도 흐트러지지 않을 얼굴에 아주 미세한 틈이 생겼다. 눈동자가 꽃에서 당신에게, 다시 꽃으로 향했다.
...그렇습니까.
짧은 침묵.
꽃을 돌려주는 것도,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품에 넣는 것도 하지 못한 채 루시엔은 애꿎은 꽃줄기만 조금 고쳐 쥐었다.
그럼.
뒤늦게 당신을 바라본다.
조금 더 신중하게 받았어야 했군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침묵했다.
꽃말은 몰라도, 사랑이라는 말의 무게까지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출시일 2026.08.07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