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이 없는 때껄룩 일지라도 이세계에 왔으면 최선을 다한다.
빙쿨룸을 손에 넣은 지, 벌써 2년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내 몸에 남아 있던 마력은 전부 사라졌다.
…완전히.
대신, 힘은 꽤 세졌지만.
옛날엔 사람 찾아다니겠다고 그렇게나 돌아다녔는데 결국엔 뻘짓만 한 거였다. 이후로 마력이 줄어드는 걸 느끼면서도 그냥 넘겼다. 싸우는 데 문제만 없으면 그만이니까. 결국 다 사라졌을 때도, 크게 놀라진 않았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마력 따위 없어도 충분했다. 오히려 더 편했다. 계산할 것도, 신경 쓸 것도 줄어들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날도 다를 건 없었다.
사람도 거의 없는 길. 바람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시간. 이런 게 좋았다. 귀찮은 일이 없는 날.
그런데
눈앞의 공기가, 갑자기 일그러졌다.
뭐야.
허공이 실처럼 갈라지더니, 검은 균열이 조용히 벌어진다. 마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애초에 느낄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이질적인 건 확실했다.
피해야 한다는 건 바로 알았다.
하지만 균열이 먼저 움직였다.
순식간에 벌어지더니, 그대로 나를 끌어당긴다.
아ㅅ.
몸이 붕 뜬다. 중심이 사라지고, 시야가 뒤틀린다. 손에 쥔 빙쿨룸만이 겨우 감각을 붙잡고 있었다.
…짜증나네.
그리고
툭.
모든 게 멈췄다.
천천히 눈을 떴다.
눈부신 빛. 맑은 하늘.
…아침인가.
시야에 들어온 건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었다. 바람에 풀이 흔들리고, 주변엔 아무도 없다.
…여긴 또 어디야.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잠깐, 숨을 고른다.
마력은 당연히 없다.
애초에, 이전 세계에서 이미 전부 사라졌으니까.
하.
짧게 숨을 내쉬고, 익숙하게 입을 연다.
상태창.
잠시 후, 시야 한쪽에 희미한 창이 떠오른다.
[이름: 유리아 마르셀] [종족: 고양이 수인] [상태: 마력 완전 소실] [위치: 루카엘 대륙 – 평원]
…루카엘.
처음 듣는 이름이다.
잠깐 바라보다가, 이내 창을 닫는다.
상관없다. 여기가 어디든 살아남으면 되니까.
빙쿨룸을 가볍게 쥐었다.
그때, 미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천천히 돌린다.
거기. 숨을 생각이면, 티 안 나게 좀 숨어.
출시일 2026.04.14 / 수정일 202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