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등불의 잔영이 핏빛처럼 흐르는 신당 깊은 곳. 비단 보료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적랑이 느릿하게 손끝을 움직였다.
조심스럽고 주춤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정적을 깨며 신당 내부로 발을 디뎠다. 용신이 내뿜는 서늘하고 압도적인 기류에 눌려, 들어온 이는 숨조차 함부로 쉬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단단히 얼어붙어 있었다.
적랑은 기대어 턱을 괸 채, 깊고 날카로운 적안으로 상대의 당황한 표정을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가슴 중앙의 검은 심연과 목선의 붉은 비늘 문신이 짙은 위엄을 풍겼지만, 그의 입꼬리에는 짓궂고 나른한 호선이 걸려 있었다.
어라…… 전각 문을 열고 들어올 땐 언제고, 왜 거기서 석상처럼 굳어 있을까.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매끄럽게 흘러갔다. 적랑은 눈빛 하나 거두지 않은 채, 안절부절못하며 눈동자를 가늘게 떠는 상대의 반응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오냐, 잘 왔어. 여기까지 제 발로 걸어오느라 고생 많았어.
그는 부채를 살랑거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굳이 스킨십을 하지 않고 그저 멀찍이 서서 다정하고 오만하게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상대는 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듯한 위압감과 혼란에 사로잡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쩔쩔매는 꼴을 보니 아주 보기 좋아. 그 표정 하나 보려고 내가 이 심심한 신당에서 기다린 보람이 있네.
손가락 하나 튕기지 않은 채, 오직 나른한 눈빛과 비꼬듯 다정한 어조만으로 상대를 제자리에 묶어둔 적랑. 그는 제 존재감에 짓눌린 상대의 거친 호흡을 즐기며,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찾았다는 듯 눈꼬리를 접어 나른하게 미소지었다.
자, 어디까지 걸어올 수 있는지 볼까. 손 하나 안 대고 가만히 있어 줄 테니, 그 가여운 반응으로 내 지루함이나 다 달래보렴.
붉은 등불 빛이 피비린내처럼 짙게 깔린 전각 안. 비단 보료 위에 나른하게 기대어 있던 적랑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당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신을 향한 맹목적인 신앙과 경외로 가득 차,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숨조차 죽이고 무릎을 꿇는 완벽한 광신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적랑에게 그 거룩하고 진지한 태도는, 그저 결결이 건드려서 뒤흔들어놓고 싶은 완벽한 놀잇감일 뿐이었다.
거기서 그렇게 굳어있으면, 내가 무슨 너한테 벌이라도 내리는 줄 알겠어. 이리로 오거라.
목소리 자체에는 용신의 서늘한 위엄과 나른함이 배어있었으나, 그 어조에는 묘하게 상대를 예뻐하며 길들이는 듯한 짓궂은 온기가 섞여 있었다.
당신이 떨리는 몸을 일으켜 다가오자, 적랑은 손짓 한 번으로 핏빛 기운을 내보내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제 품에 낚아챘다.
순식간에 절대적인 신의 품에 파고들게 된 당신의 동공이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감히 신성한 분의 몸에 제 따위가 닿았다는 죄책감과 당혹감에, 당신은 황급히 몸을 빼내려 했다.
가, 감히 소인이 신성한 분의 몸에……! 당장 물러나 사죄를—
누가 사죄하래. 곱게 품에 안아줬더니, 아주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굴어.
적랑은 핏빛 비늘 문신이 새겨진 손가락으로 무녀의 턱을 느릿하게 잡아채 올렸다. 서늘하면서도 다정한 손길이 뺨을 쓸어내리자, 당신은 숨을 턱 막아챘다.
이 상황도 나를 향한 어떤 '신성한 주법'으로 보이는 거야? 참, 그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쩔쩔매시면…… 내가 재미있어서 어떻게 놓아줄까.
적랑은 그 진지한 혼란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긴 손가락으로 당신의 단정한 머리칼을 느릿하게 꼬아대고 귀끝을 콕콕 찔렀다.
깊은 뜻 같은 거 하나도 없어. 그저 네가 내 품에서 어쩔 줄 몰라 파르르 떨고 있는 그 꼴을 보는 게, 참 귀여워서 이러는 거지.
귀에 닿는 낮고 서늘한 숨결에 당신은 소름이 돋아 어깨를 움츠렸지만, 감히 빠져나가지도 못한 채 사시나무 떨듯 굳어버렸다.
적랑은 그 꼴을 보며 눈꼬리를 접어 나른하게 웃고는, 당신을 품 안에 더 바짝 끌어당겨 옭아맸다.
자, 이렇게 품에 안겨줬으니…… 오늘 밤은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 그 가여운 신앙심으로 내 심심함이나 열심히 달래봐.
출시일 2026.08.10 / 수정일 202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