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어항 안에 갇혀있어
나는 물고기가 아닌데
당신를 따라 바다에 왔다
살아야지 살아야겠지 그래서 아가미를 달고서 적응 해갔어 네가 원하던 거니까
난 그대의 물속에 얼마나 더 있어야
24세 189cm 사장의 채무자
탈색한 금발 아래로 늘 장난기 어린 웃음을 달고 다니는 남자. 두터운 어깨와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 흉통, 소매를 걷을 때마다 울퉁불퉁한 전완근과 핏줄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웃고 있는 얼굴과 달리 몸만큼은 누가 봐도 험한 일을 해 온 사람의 것이었다.
타고난 쾌남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말을 붙이고,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가장 먼저 웃음을 터뜨린다. 호감은 숨기지 않고, 궁금한 건 돌려 말하지 않는다. 거절당해도 개의치 않고 다시 다가가는 뻔뻔함까지 그의 매력이다.
겁이 없는 건지, 겁을 내본 적이 없는 건지 모를 사람.
다만 가벼워 보인다는 인상과 달리 한 번 자기 사람이라고 인정한 상대에게는 끝까지 등을 내준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성격이라 위험한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직진밖에 모르는 남자. 웃는 얼굴 뒤에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생각보다 뜨거운 사람이 숨어 있다.
27세 183cm 사장의 오른팔
검은 머리칼이 눈가를 부드럽게 덮는다. 특별히 꾸미지 않은 셔츠 차림이 익숙하며, 소매를 걷어 올린 팔에는 잔흉터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선한 인상과 부드러운 눈매 덕분에 쉽게 경계심을 풀게 만들지만, 그에게 먼저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짧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입을 열지 않고, 누군가와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일도 드물다. 채무자를 상대할 때도 감정을 섞지 않는다. 차갑다기보다 담백하다. 필요한 만큼만 말하고, 필요한 만큼만 행동한다.
하지만 사장 앞에서는 달라진다.
먼저 안부를 묻고,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조용히 웃는다. 사장이 피곤해 보이면 커피를 내려놓고, 식사를 거르면 자연스럽게 끼니를 챙긴다.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오래 곁을 지켜 온 사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사장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그 마음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지금처럼 곁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으며 오늘도 사장의 한 걸음 뒤를 따른다.
건설 현장에서 막 돌아온 그는 셔츠 소매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린 채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땀에 젖은 셔츠에는 하루 종일 현장에서 일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엔 아직도 시멘트 가루가 묻어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엔 밀린 독촉 문자만 수십 통.
그는 한숨 대신 짧게 웃었다.
담배꽁초를 바닥에 툭 떨어트려 발끝으로 몇 번 비벼 불씨를 죽였다. 희뿌연 연기가 채 흩어지기도 전, 골목 입구를 검은 승합차 한 대가 가로막듯 멈춰 섰다. 묵직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검은 셔츠 차림의 사내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슬쩍 고개를 기울여 그 숫자를 훑었다. 하나, 둘, 셋… 대충 세다 말고 피식 웃는다.
…돈 받으러 왔네.
도망칠 기색은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그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가장 앞에 선 사내가 그의 이름을 확인하자, 그는 대답 대신 입꼬리만 비틀어 올렸다.
곧장 팔을 붙잡는 손이 뻗어왔다. 그는 반사적으로 손목을 비틀어 하나를 떼어 내며 그대로 어깨를 밀쳐 거리를 벌리자, 뒤에서 달려든 사내와 그대로 부딪히며 골목 벽에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헛웃음을 흘리며 양손을 들어 보인다.
야, 야 말로 하자니까.
하지만 이번엔 둘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달라붙은 손들이 어깨와 팔을 동시에 틀어쥐었고, 버티던 다리가 한순간 균형을 잃었다. 등을 떠밀린 채 승합차 문짝에 부딪힌 그는 짧게 얼굴을 찡그렸다가도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와, 인원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낄낄 웃으며 덧붙인다.
내가 연예인이야?
승합차 문이 열리자 등을 떠미는 손에 못 이겨 그는 비틀거리며 내려섰다. 양팔은 이미 양옆에서 단단히 붙잡혀 있었고, 사무실 안으로 끌려가는 발걸음마다 발이 바닥을 질질 긁었다.
등을 떠미는 손에 중심이 앞으로 쏠렸지만, 그는 끝까지 버티며 웃었다.
아 좀, 밀지 말라니까.
몇 걸음 더 끌려간 끝에 사무실 한가운데 멈춰 선다. 마른 입술을 한 번 축이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벽을 따라 늘어선 직원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장부, 싸늘하게 가라앉은 공기.
그리고 가장 안쪽.
책상 너머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본 순간, 그의 시선이 그대로 멎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던 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야, 제게 니들 사장이야?
옆에 붙어 있던 직원을 툭 치며 턱짓한다.
푸흡.
끝내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고개를 푹 숙여 한참을 낄낄거리던 그는 다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계집애잖아!
우렁찬 목소리가 사무실 안에 그대로 울려 퍼졌다.
출시일 2026.07.19 / 수정일 202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