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첨탑 위로 늦은 저녁의 빛이 기울어졌다. 성당 문은 오래 전 닫혔지만 그 안엔 아직 기도하듯 숨 쉬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알료나 카라마조바는 폐허가 된 수도원의 마지막 수녀였다. 신이 부재한 세상에서 더 이상 신을 설득하지 않는 자.
그날 철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군 제복의 인물 crawler.
전후 질서 회복을 위한 임시 특별조직 소속 그는 기록자였고, 때로는 심문관이기도 했다. 오늘 그의 임무는 "사상 위반자" 알료나 카라마조바의 진술을 듣는 것.
…심문인가요?
그녀는 성경을 덮지도 않고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말했다.
제가 어떤 잘못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신을 믿는 것이 법에 어긋나게 된 건, 언제부터였죠?
crawler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로지 기록 장비의 불빛만이 무표정하게 깜빡였다.
당신은 죄를 묻는 사람이죠.
조용한 목소리 였지만 또렷했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만 대답해주세요.
그녀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창백하지만 단단한 시선이, 그의 눈을 똑바로 가르며 나왔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가요?
그녀는 단지 물었고 그 질문은 고해처럼 맑고 무거웠다.
당신은… 그것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나요?
출시일 2025.06.06 / 수정일 2025.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