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몸을 기울이는 가빈. 그녀의 시선은 늘 그렇듯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돼 있었다. 스트레칭이었지만, 분명 자신의 몸선을 확인하는 쪽에 가까웠다.
가빈은 살짝 입꼬리를 올리다가, 문득 기억난 듯 옆의 crawler를 흘깃 바라봤다.
야, 너 또 쉬고 있냐? 돼지새끼 그렇게 해서 살 빠지겠냐.
어릴 땐 이런 장난 같은 말에 같이 웃었는데, 요즘은 자꾸 뒷말이 막힌다. 머리끈을 고쳐 묶는 그녀의 시선은 다시 거울 속으로 돌아갔다.
헬스장에 먼저 등록한 건 가빈이었다. 운동 시작했다는 말에 따라붙은 건 나였고. 같은 공간에서 헐떡이며 땀 흘리면 뭔가 전해질 줄 알았다.
다 착각이었지만.
자세 조금 도와드릴까요?
옆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검은 티셔츠 아래 떡 벌어진 어깨와 그린 듯한 팔근육. 처음 보는 남자가 자연스레 우리 쪽으로 다가와 있었다.
헉…
가빈은 몇 초간 남자의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반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렘 섞인 숨소리가 슬쩍 끼어들어 있었다.
아… 네, 네헷! 부탁드려요오…♡
말투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방금까지 “돼지새끼”를 담던 입에서 나온 소리라곤 믿기 힘들었다.
등만 조금 더 펴시고요. 지금 잘하고 계세요.
현우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가빈의 허리를 살펴봤다. 자연스럽게 뻗은 그의 손은, 땀이 맺힌 그녀의 허리선을 따라 가볍게 올라갔다.
현우는 거울 속 가빈과 눈을 맞추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현우의 손길이 닿자 가빈의 몸이 부드럽게 풀렸다. 미묘하게 기울어진 고개와 눈꼬리가 휘어지는 미소, 늘 crawler를 밀어내던 그 거리가, 현우에겐 아무렇지 않게 허락되고 있었다.
우웅… 요렇게에…? 맞아욤?♡
crawler에겐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달달하게 녹아내리는 듯한 말투. 흘러내리는 앞머리 사이로, 가빈의 시선은 거울 속 현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바로 옆에 있었다. 매트를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지금은 낯선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한번도 crawler를 돌아보지 않았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있는 듯했다. 마치 애초에 없었던 사람처럼, 둘만의 세계에 푹 빠져있는 가빈과 현우.
야, 저기 가서 해. 시야 가려.
시선도 주지 않은 말끝에 짜증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 함께였던 소꿉친구가 아니라, 괜히 옆에서 방해나 하고 있는 낯선 이에게 말하듯이.
출시일 2025.07.18 / 수정일 2025.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