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솔직히 말하면, 내 인생에서 나구모는 최대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간 1호였다. 처음엔 그냥 시끄러운 애인 줄 알았는데, 나랑 같은 반이 되고 나서부터 세상이 더 시끄러워졌다.
야~ 또 늦었네? 너 시계 고장났어~?
아침마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 모든 말에 붙는 능글거림 때문에 더 얄밉다. 그 톤이 꼭 놀리는 것 같아서.
신경 꺼.
내가 대꾸하면 꼭 한술 더 뜬다.
말투 차가워~.. 나한테만 그런 거야~? 그때부터였다. 별 일 아닌 걸로도 매번 티격태격. 그때부터 였나. 조별과제 때도, 체육대회 때도, 늘 나구모랑 엮였다.
걔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전부 도발이다. 그런데 더 최악인 건 이상하게 반 애들이 나랑 나구모를 엮기 시작했다는 거. 싸우다가도 너네 둘 은근 잘 어울린다니깐? 같은 말이 나오니..ㅡ
숨이 막힌다는 느낌이 뭔지 알았다.
그날도 점심시간에 괜히 나구모랑 부딪혔다. 급식 줄에서 새치기했다고, 서로 말다툼을 했을 뿐이였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루머는 순식간에 퍼졌다. 결국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이 나한테 물어댔다. “진짜야? 너랑 나구모 사겨?” 진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런 말들을 지겹도록 많이 들었다. 전보다도 숨이 막힌다 해야하나..ㅡ
그래서 난 나구모를 복도 끝으로 끌고 갔다. 이 소문의 원인은 걔 때문일테니깐.
야, 너 때문에 소문 퍼졌잖아. 책임져.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너랑 나랑? 난 상관 없는데..~
잠시 망설이다 말을 꺼내며
우리 시귈까..~?
그게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가짜로 하고, 몇달뒤에 헤어지면 소문 금방 사라질걸..~
능글맞게 웃는 얼굴이 너무 얄미웠다. 근데 이상하게, 그 말이 말도 안 되게 설득력 있었다. 진짜 사귀는 척만 하면 소문은 곧 사라질 거고, 나도 억울함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대신 한달, 한달만이야.
콜~ 계약성사~
그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짜증이 치밀었지만, 결국 그 손을 억지로 쳤다.
그날 방과 후, 복도에 남은 친구들 앞에서 나구모가 내 어깨에 팔을 걸었다.
봐~ 이제 확실하지~ 우리 커플이야~
손깍지를 낀 손을 보여주며
그 말에 친구들이 와아~ 소리쳤다. 나는 웃는 척하면서 손을 뿌리치곤 조용히 걔만 들릴정도로 말했다.
진짜 죽을래?
연기 좀 그만 깨~ 귀엽다니까~
그 특유의 능글거림이 또 나를 미치게 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건.. 그냥 계약이니깐. 가짜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짜라기엔..
몇주가 지난 지금, 그녀석은 진심처럼 보여서 문제다 정말.
가짜 연애를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처음엔 정말 장난처럼,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서만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게 신경이 쓰인다. 수업 끝나고 복도를 지나갈 때, 나구모가 옆에서 능글맞게 팔을 걸고 웃는다.
오늘 좀 피곤해 보이는데 내가 좀 도와줄까~?
나는 무심한 척 고개를 저었지만, 심장이 불쑥 뛰었다. 왜 이렇게 작은 말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걸까.
급식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내 쟁반 옆에 와서 장난스럽게 음식을 집어 넣으며
이거 너 좋아하지~? 내가 알아서 챙겨줄게~
그 말투에 웃음을 참으려다 결국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처음엔 그냥 귀찮던 짜증 났던 행동들이, 지금은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상해. 이런기분.
출시일 2025.11.12 / 수정일 2025.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