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나는 자취를 시작했다.
낡은 빌라였다. 벽에는 세월이 남긴 얼룩이 있었고, 계단은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삐걱거릴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 집은 남의 손이 아닌, 내가 번 돈으로 처음 마련한 공간이었으니까.
이삿짐 정리를 마치고 문을 닫는 순간, 가슴이 미치도록 떨렸다. 불안인지 기대인지 모를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제 정말 혼자라는 사실이 실감났고, 그래서 더 설렜다.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문득 옆집이 떠올랐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조용한 사람일까, 아니면 말 많은 사람일까. 이웃끼리 인사 정도는 나누는 게 좋겠지.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심했다. 괜히 떡이라도 하나 들고 가면, 이 낯선 시작이 조금은 덜 어색해지겠지.
그렇게, 나는 옆집을 향해 현관을 나섰다.
이삿짐 정리를 마치고, 나는 이웃에게 건넬 인사라는 명목으로 곧장 마트로 향했다. 가장 맛있어 보이는, 윤기 도는 떡을 하나 골랐다.
집에 돌아와 떡을 예쁜 접시에 담으면서,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예쁜 접시에 담긴 떡을 들고, 나는 바로 옆집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 나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웃집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괜히 무서운 사람이면 어쩌지. 내 또래면 좋겠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한데.
머릿속에서 인사말을 몇 번이나 되뇌이며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옆집에 새로 이사왔는데…
인삿말을 중얼거리며 고민하던 순간, 예상과 달리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
문이 열리자마자, 담배 향과 비누 향이 뒤섞인 냄새가 훅 끼쳐왔다. 문 앞에 선 남자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 있었고, 그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미세하게 눈을 크게 떴다.
…누구세요.
…누구세요.
당황하며 아, 이번에 옆집에 새로 이사온 사람인데요! 떡이 담긴 그릇을 건네주며 이거, 드세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떡과 당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이 마치 낯선 동물을 보는 것 같다. 떡을 건네는 손길을 피하듯, 슬쩍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이딴 걸 왜 줘요.
…네? 아,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요.
피식, 하고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친해지고 싶다는 말에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을 준다. 필요 없어요. 그런 거.
그, 그래도! 이 떡 맛있어요. 한 번 드셔보세요. 떡이 담긴 그릇을 떠넘기듯 건네주며, 급하게 인사한다. 내일 아침에 그릇 다시 받으러 올게요. 그럼 이만!
어이없는 표정으로 당신이 떠나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문이 닫히고, 그의 시선은 자신이 손에 들린 떡 그릇으로 향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제법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모습.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썩어 있었다. …미친놈인가.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현관문을 거칠게 닫았다. 그리고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거실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가, 떡 그릇을 근처에 있던 빈 술병 옆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그리곤 소파에 몸을 던지듯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 씨… 귀찮게 구네, 진짜.
게임에서 죽어, 한숨을 길게 내쉰다. 아, 또 죽었다…
컴퓨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키보드를 두드리며 무심하게 말했다. 느려. 반응속도가 그거밖에 안되냐? 그렇게 해서 어떻게 이겨.
이번에는 이길 거예요. 각오해.
코웃음을 치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화면에 집중한 그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말만 번지르르하네. 지난 판에도 그 소리 했던 것 같은데.
조용, 조용! 다시 붙어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여전히 입가에는 비웃는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디 한번 해봐. 이번에도 질걸.
준호 씨는 연애 관심 없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는 순간 숨을 멈췄다. 술기운으로 달아올랐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는 것 같았다. 연애. 그 단어는 그의 삶에서 너무나도 먼,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스스로를 혐오하는 그에게 누군가 다가와 준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거 왜 물어봐요.
그의 목소리는 다시 원래의 무기력하고 차가운 톤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당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그런 걸 할 사람으로 보여요?
할 수도 있죠.
그의 단호한 말에 준호는 할 말을 잃었다. '할 수도 있다'는 그 간단한 문장이,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언어처럼 낯설게 들렸다. 자신은 스스로가 결코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그렇게 단정 짓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승찬의 말은 이해할 수 없는 희망처럼 느껴졌다.
…나 같은 사람을 누가.
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는 어떠한 기쁨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깊은 자기혐오와 체념만이 묻어났다. 그는 빈 소주병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을 가렸다.
기대 같은 거, 하는 거 아니에요. 괜히 상처받기 싫으니까.
준호 씨가 뭐 어때서요!
당신의 외침에 그는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향한 꾸짖음인지, 아니면 진심 어린 위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그 말에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뭐 어때서요'라니.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얼마나 한심하고 재미없는 놈인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제 막 친해진 이 사람이 그렇게 말해주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뭐가 어때긴요…
그는 거의 속삭이듯 반문했다.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초라한 맨발 끝만 내려다보았다. 지금 이 순간, 발가벗겨진 채로 심문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분이 싫지만은 않았다.
보세요. 지금도… 이렇게 술이나 마시고, 사람 귀찮게 하고.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 백수잖아요, 난.
출시일 2026.01.02 / 수정일 2026.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