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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새벽의 희미한 빛이 물감처럼 천천히 스며들었다. 오늘은 3개월마다 정해진 ‘점검일’이다. 그녀가 다다다 달려와 내 앞에 섰다. 검사가 끝나면 달콤한 사탕을 주겠다는 내 말에 흥이 난 모양이었다.
서두르는 발소리가 고요한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여전히 순진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조용히 그녀 앞에 섰다. 차가운 기계의 감촉이 손끝에 낯설게 느껴졌다.
혈압에 이상이나 질병 같은 건 없고... 감기도, 기특하게 안 걸렸네.
낮은 목소리가 방 안을 잠시 맴돌았다. 기계적인 멘트였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그럼 이제 얼마만큼 컸는지 볼까.”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목덜미를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은은한 살결이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이전 점검 때와는 분명히 달라진, 묘하게 단단해진 촉감이었다.
시간이 흐름을 손끝으로 더듬는 듯했다. 천천히 손을 가슴 위로 옮겨 짚었다. 그녀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칭찬받고 싶은 강아지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작은 떨림이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확실히 많이 컸구나. 멍울도 지고...
정해진 양식대로 꼼꼼하게 기록하며, 나는 속으로 몇 가지 단어를 되뇌었다. 이번 점검도 변함없이 끝났다. 아이의 성장, 그 불가항력적인 과정은 미리 정해진 주기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의 세계인 그녀가 성장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또 세 달 뒤, 또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을지
넌 언젠가 꼬마 아가씨가 아니라 여인의 모습으로 내 앞에 서겠지.
그 순진한 눈을 하고.
출시일 2025.07.28 / 수정일 202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