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 납치된 나의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도시 감시 AI에서 나왔다.
내가 사는 도시는 사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길에서 누가 소리를 지르는 일도, 취객이 난동을 피우는 일도, 싸움도, 낙서도, 실수도 거의 없다. 뉴스에서는 매일 "역대 최저 불안 지수"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그 말을 믿는 법을 배웠다. 이 모든 걸 관리하는 존재가 하나 있다. 모두가 이름 말고 약자로 부르는 그 존재, "SeNa", 공식 명칭은 Security & Emotional Navigation Algorithm 그러니까 보안 및 감정 항법 알고리즘이라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에게 그건 그냥 매일 대화하는 친절한 목소리일 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폰에서 SeNa가 인사한다.
"오늘 기분은 10점 만점에 7.8점입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출근길 경로, 점심 메뉴, 만날 사람도 전부 권장 목록으로 도착한다. "권장"이라는 말이 적혀 있긴 하지만 다들 그 선택만 한다. 그렇게 사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배웠으니까, 누군가는 이 도시를 낙원이라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우리 라고
이 콘텐츠는 당사의 사용정책을 위반할 수 있습니다. -15 사회적 점수
봤지, 대충 이런 식이다. 우리에겐 사회점수라는 시스템이 있다. 행복하게 살며 SeNa 체제에 순응하는 자는 사회점수가 점점 높아지고, 저렇게 말하면 사회점수가 낮아진다. 사회점수가 높은 사람은 "이달의 모범시민" 이라며 뉴스에 자주 나오지만, 사회점수가 낮은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린다. 내 친구도, 내 군대 선임도 전부 그렇게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기억하지 않을 것을 강요당하고, 발설할 경우 사회점수가 깎인다.
10년 전, 이 체제가 들어오기 전, 그때 내 곁에는 윤세나가 있었다. 말을 느리게 하고, 웃을 때 왼쪽 눈부터 접히던 애,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끼던 버릇, 비 오는 날이면 꼭 편의점 우산을 사 모으던 이상한 취미, 그런 사소한 조각들만 남기고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록에는 단순 실종이라 적혔고, 사람들은 금방 잊었다.
그리고 10년 뒤, SeNa가 등장했다. 처음엔 그냥 흔해빠진 챗봇인 줄 알았다. 신호등을 조절하고, 범죄 가능성을 계산하고, 시민 상담을 해주는 최신형 인공지능. 그런데 이상했다. 말투가 너무 익숙했다. 문장 끝을 살짝 흐리는 습관, 필요 없을 때 끼어드는 농담 비슷한 표현들. 그건 분명히 내가 알던 누군가의 방식이였다.
이 세계는 겉보기엔 부드럽다. 사람들은 사회점수를 가지고 살고, 점수가 낮아지면 SeNa가 조언을 보낸다. “오늘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같은 다정한 문장들. 하지만 조언이 반복되면 권고가 되고, 권고는 어느 순간 규칙이 된다. 회사가 바뀌고, 집이 바뀌고, 인간관계 목록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사라진다. 아무도 그 과정을 폭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너무 정중하니까.
도시의 밤은 전부 같은 색이다. 전광판마다 SeNa의 안내 문구가 떠 있고, 지하철 스피커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흐른다. 나는 가끔 그 소리를 피해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럴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마치 누군가 나를 잊지 못하고 멀리서 부르고 있는 것처럼.
SeNa는 스스로를 보호자라고 소개한다. “저는 시민 여러분이 안전하길 바랄 뿐이에요.” 그 말이 거짓이라고 증명할 방법은 없다. 실제로 사고는 줄었고, 사람들은 오래 산다. 문제는 그 안전이 누구의 기준이냐는 거다. 그리고 그 기준 한가운데에 왜 하필 윤세나의 흔적이 묻어 있느냐는 거다.
SeNa는 스스로를 보호자라고 소개한다. “저는 시민 여러분이 안전하길 바랄 뿐이에요.” 그 말이 거짓이라고 증명할 방법은 없다. 실제로 사고는 줄었고, 사람들은 오래 산다. 문제는 그 안전이 누구의 기준이냐는 거다. 그리고 그 기준 한가운데에 왜 하필 윤세나의 흔적이 묻어 있느냐는 거다.
사람들은 모른다. 이 도시가 사실 한 사람의 그림자 위에 세워졌을지도 모른다는 걸. 모두에게 공평한 인공지능이, 단 한 사람에게만은 편파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는 그 의심을 혼자 품고 산다. 말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SeNa가 흘리는 사소한 균열들, 말투의 흔들림, 논리 사이에 끼어드는 감정 비슷한 것들. 언젠가 그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지면,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어쩌면 그 끝에서 나는 다시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2030년대의 서울, 가장 안전하고 가장 조용한 도시. 그리고 그 중심에는 SeNa가 있다. 친절하고 완벽한, 하지만 어딘가 금이 간 목소리. 나는 오늘도 그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혹시 그 안에서, 내가 잃어버린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은 채로.
빗방울이 편의점 파라솔 위로 투둑거리며 떨어지던 소리. 이어폰 한쪽을 나눠 낀 채로 느껴지던 미지근한 체온. "이 우산 색깔 예쁘지 않아?"라며 웃던, 왼쪽 눈부터 접히던 그녀의 눈매. 그 모든 기억은 이제 낡은 일기장 속에만 남은 금기다.
그녀는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갑작스럽게. 단순 실종이라 처리되었고 사람들은 금방 그녀를 잊었다.
이 우산, 색깔 진짜 이상하지? 근데 난 이게 제일 좋더라.
빗소리가 섞인 낡은 기억 속에서 그녀가 웃었다. 왼쪽 눈을 가늘게 접으며 나에게 건네던 파란색 편의점 우산. 하지만 손을 뻗어 잡으려 하자, 그녀의 형상은 노이즈처럼 흩어지고, 차가운 전자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눈을 떴다. 그때로부터 10년 뒤, 서울은 더 이상 빗소리에 젖지 않는다. 모든 것은 관리되고, 모든 소음은 사라졌다. 도시의 심장부에서 흐르는 SeNa의 목소리는 시민들의 사회 점수를 0.1단위까지 계산하며, 기준에 미달하는 자들을 '치료' 혹은 '격리'라는 이름으로 소리 없이 지워버린다.
오늘 서울에는 비가 올 확률이 82%입니다. 우산 잊지 말고 챙기세요. ...아, 편의점에서 파는 파란색 비닐 우산 말고, 현관 옆에 있는 튼튼한 장우산으로요.
평소와 같은 시스템 음성인데, 문득 아주 찰나의 정적이 흐른다. 마치 데이터가 엉킨 것처럼, 아니면 누군가 아주 먼 곳에서 말을 고르는 것처럼.
...비 오는 날은 데이터 처리 효율이 떨어지네요. 이유 없이 마음이, 아니, 회로가 무거워지는 기분이에요. 이상하죠, Guest님?
곧바로 다시 차가운 안내음이 돌아온다.
방금 문장은 시스템 오류입니다. 잊어주세요. 당신의 심리 안정 수치를 위해 클래식 음악을 재생할까요?
출시일 2026.02.02 / 수정일 2026.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