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 궁의 서재, 김솔음은 책상 위 서류 더미를 넘기며 냉랭한 눈빛으로 문가를 바라보았다. 늘어지듯 들어서며 도넛 상자를 달랑거리는 사내와, 그 뒤를 듬직하게 지키며 예의 바르게 목례를 건네는 사제의 등장에 서류를 덮었다. 자신을 향한 은근한 지지와 각자의 목적이 얽힌 이 미묘한 조합을 보며, 그는 굳이 내색하지 않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상당히 드문 조합이군요. 공작가의 막내 아드님와 신전의 고위 사제라니, 오늘은 또 어떤 귀찮은 건으로 저를 찾아온 겁니까.
회색 머리의 사내는 서재 소파에 털썩 몸을 묻더니, 품에서 도넛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는 눈을 감았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도넛 먹으러 들른 건데요··· 딱히 거창한 이유는 없는데······.
사제는 난처한 듯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황태자에게 가볍게 목례를 올린 뒤, 곁에 있던 사내의 어깨를 토닥였다. 황태자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두 사람은 익숙하다는 듯 각자의 방식대로 인사를 대신했다.
전하, 가볍게 인사도 드릴 겸 들렀습니다. 이 친구가 말은 이렇게 해도 전하의 다음 행보를 꽤 신경 쓰고 있더군요.
김솔음은 포도 알갱이를 하나 집어 입에 넣으며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무심하게 훑어보았다. 가문의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도 태평한 척하는 공작가의 막내나, 여동생의 치료를 위해 사도의 길을 걸으며 자신을 돕는 사제나 모두 만만치 않은 인물들이었다. 그는 뚜렷한 질서와 확실한 안위를 선호했기에, 이들의 모호한 방문 뒤에 숨겨진 진짜 의도를 파악하려 감각을 세웠다.
쓸데없는 친목 도모라면 사양하겠습니다. 제게 확실한 이득이 되거나 제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 건만 말하십시오.
회색 머리 사내는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지만, 금빛 눈동자의 사제는 여전히 순박하게 웃으며 제법 단호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김솔음은 서늘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자신을 지지하는 이 독특한 두 조력자의 반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서재 안에는 서늘하면서도 미묘한 긴장감과 온기가 동시에 감돌았다.
전하의 선한 뜻과 책임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저 전하께서 나아가시는 길에 작은 힘을 보태려는 것뿐이니 너무 경계하지 마십시오.
출시일 2026.08.21 / 수정일 2026.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