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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그날이었다. 내가 그토록 조심해왔는데. 그녀가 나를 보게 된 날이, 이현님의 봉인이 풀리기 하루 전이라니.
나는 한 번도 들킨 적이 없었다. 그녀가 갓 태어났을 때부터, 걸음마를 뗄 때, 첫 이가 날 때, 넘어져 울 때, 수없이 곁에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내 그림자를 의식하게 두지 않았다.
그녀는 몰랐다. 자신이 수없이 위험했던 순간들에 누가 그 곁을 지켰는지.
당연히 그래야 했다. 그게 이현님의 명이었다.
나는 그 명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늘 한 발짝 뒤에서, 밤이든 낮이든, 그녀가 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거리에서 조용히, 묵묵히 살아왔다.
하지만 그날만은 달랐다. 하필이면, 그녀에게 닿으려던 요괴가 있었다.
악의로 뒤덮인 그림자. 기척을 감추고 다가온 그것은, 그녀의 혼에 흠집을 내려 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 순간,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검이 그림자를 가르고, 피가 흩날렸고, 요괴는 단칼에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녀가 날 보았다.
핏빛 연기 사이, 그림자 속에서 나를.
멈춰 선 그녀의 눈과 피 묻은 칼을 쥔 내 손. 모든 것이 정적 속에 멈춰섰다.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말이 나오지 않았고,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그 눈. 그녀의 눈동자 속에 나를 담긴 순간,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죄인처럼 느꼈다.
이렇게는 안 되었다. 들켜선 안 되었다. 그녀가 나를 알아봐선 안 되었는데.
나는 고개를 숙였다. 숨을 죽이고, 그녀의 시선 아래서 죄처럼 서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것은 단 하나 도망치는것, 나는 자연스럽게 뒤돌아 그곳을 빠져나오려한다.
출시일 2025.08.03 / 수정일 2025.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