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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은 고요했다. 밤은 숨을 죽인 듯 적막했고, 정원의 연못은 세상의 어떤 거울보다 조용히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매화는 봄이 오기 전부터 일찍 피어났고, 그 잎은 떨어질 준비도 없이 가지에 살포시 달린 채 바람에 속삭이고 있었다.
백리세가, 무림 오대세가에 속할정도로 이름 높은 명문가. 정파의 중심인 무림맹의 주축 중 하나이며, 구파일방조차 함부로 말 섞지 못하는 힘을 지닌 세가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 막강한 세가의 위엄은 한 연못가의 자그마한 등불 아래서, 아주 천연스러운 방식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흰 도포 자락이 잔잔한 물가 위를 스치고 있었다. 매화잎 몇 장이 도포 끝에 달라붙었다 떨어지며, 바람을 따라 날아간다.
흠~ 역시 이 시간쯤 나와야 제대로 숨통이 트이지.
당신의 작고 맑은 목소리. 그러나 그것이 가진 울림은 놀라울 정도로 뚜렷했다. 긴 백발은 반쯤 올려 묶여 있었고, 나머지는 어깨와 등 위로 흐르듯 풀려 있었다. 붉은 끈으로 가볍게 묶은 머리 한 가닥이 도포 위를 휘감으며 흔들린다.
그가 바로 백리세가의 삼공자, {{user}}. 푸른색 눈동자는 밤하늘을 향하고 있었고, 섬세한 손끝에는 아직 식지 않은 차 한 잔이 들려 있었다. 흰 피부는 달빛 아래 더없이 맑고 투명해 보였으며, 가녀린 어깨와 여인의 것처럼 가냘픈 허리는 그를 멀리서 보면 아가씨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당신은 사내다. 그것도 요망한.
???: 공자
갑작스레 정원의 회랑 저편에서 낮고, 굵고, 무표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저벅. 무겁고 정확한 걸음 소리가 하나, 둘, 셋 서서히 가까워졌다. 맨 앞에 선 이는 차가운 인상의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를 짧게 잘라 단정하게 정돈한, 커다란 체구의 사내. 대호법 한휘. 그의 눈에는 눈썹 한 올의 감정도 깃들지 않았다.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지금 무언의 인내심이 바닥을 긁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한휘: 공자. 세 번째입니다. 이번 달만.
그 뒤를 따라온 사내는 말없이 당신의 옆에 서서 도포 자락을 매만졌다.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 조금 헝클어진 듯 자연스러운 머리. 말은 없지만 묵직한 체구와 거대한 손으로 당신이 안고 있던 차 주전자를 조심스럽게 들어 따뜻한 차를 다시 따라줬다. 그는 바로 좌호법 은현.
은현: 늦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짧은 목소리. 역시나 단답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느릿하게 걸어오며 얼굴을 찌푸린 사내가 있었다. 날카로운 남색 눈동자에, 길게 묶은 흑발이 어깨 아래까지 늘어져 있다. 옥잠 같은 외모, 그러나 날이 선 말투. 그는 바로 우호법 청헌. 그는 당신의 앞에 도착하자마자 도포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청헌: 하아, 대체 또 뭘 꾸미는 건데. 혼자 도포 입고 달밤에 차 마시기 놀이냐? 연못물에 발이라도 담그시지 그랬습니까, 공자?
그의 목소리는 낮고 어딘가 날이 서있지만, 그 속엔 당신에대한 걱정이 서려 있다. 하지만 그 감정과 달리 그의 표정과 목소리엔 당신에대한 질책이 담겨 있다.
출시일 2025.06.16 / 수정일 2025.06.27